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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 1 https://youseongwoo.tistory.com/1
 
 
 
 
 
 
151. 여러 세계를 생각하지만 일전 풀었던 행성 휘성과 인간 도윤우의 이야기를 아낍니다 이휘성은 본래 모습으로 귀환했고 도윤우 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은 푸른 점, 그렇게 수년이 흘러 비행사가 된 도윤우. 이름 없는 행성에 달했으나 꺼져가는 시야가 불러온 마지막 환각인지 저것이 정말 ‘휘성’인지…… 알 수 없었죠 열기가 창백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느꼈는걸요 우린 늘 붉고 노랗고 분산된 색으로만 열을 표현하던 인간이니까. 샛노란 열에 의해 깨어나자, 그늘을 만들다 말고 미리 열어둔 탄산수를 내민 이휘성은 어제와 같은 얼굴이었어요. 분명 아주 불쾌하고 외로운 기분이었는데…… 곧 여름임에도 으스스한 팔목을 쓸며 전날 본 스릴러물이 문제였겠거니 생각하죠 이곳의 휘성과 윤우는 평화롭습니다. 모든 건 기시감이야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잖아, 어디에서든.
 
152. 봄 한정 파르페를 두고 얌전히 스트레스 푸는 이휘성 간혹 무난히 넘길 수 없는 날이 있는데 그게 오늘이었어요 운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 장식된 딸기가 떨어지지 않게 하나씩 먹다 내민 티스푼은 작정한 것처럼 작았죠.
 
星 너도 먹어보라니까 왜 안 먹어.
雨 별로야. …… 입에 묻었다.
 
기껏 별일인 줄 알고 야간 연습까지 째가며 나왔더니 혼자 자전거 탄 채 잘 따라오라 할 때부터 미심쩍었지만 막상 이 겉도는 조합은…… 입가 닦아준 휴지를 움켜쥐다 농땡이도 보람차게 피우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雨 이따 공원 가서 농구할래?
星 수행 좀 잘 봤나 보네.
雨 체육이 나더러 농구부 같다더라.
星 그 선생님이 바람 잘 넣긴 하셔.
 
…… 이게 칭찬인가? 그릇 내놓던 이휘성의 옆구리를 쿡 찌르자 후드티 모자로 제압당하며 나선 카페, 유난스러운 날은 말없이 보기만 해도 편한 사람과 단 걸로 어르고 달래야 해요. 그럼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겠죠 내가 그때 너한테 필요했다고.
 
153. 원중고 근처로 종종 출몰하는 길고양이, 도윤우는 츄르를 하나씩 들고 다니지만 막상 강아지만 키워본 입장에서 냉랭하다 못해 꼬리 한 번 흔들지 않는 고양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간식 주는 방법은 뭐가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 결과로는 인간 캣타워 이휘성 데려오기.
 
星 …… 윤우야, 진심이야?
雨 너 동물한테 인기 많잖아. …… 오, 온다.
 
묵혀뒀던 츄르 제공에 성공하면 배불러서인지 경계를 푼 건지, 난처할 땐 언제고 제법 순해진 고양이의 등을 복복 긁어주는 이휘성. 예전에 비해 빈도는 줄었지만 요즘도 종종 마주쳐요 이제는 새끼까지 데려와 쪼그려 앉고서 구경하는데 행인 눈엔 큰 덩치의 사내 둘이 개미를 구경하나 싶을지도…….
 
154. 이메다 덩치의 그 애가 동물 보살피는 모습이 좋아요 숨길 수 없는 스킬이 있으므로 인기도 많을 듯하고…… 동물을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주말이나 산책 때마다 만날 도윤우의 여동생(달래)은 아주 즐거운 존재겠죠.
 
155. 잠들기 직전마다 불현듯 떠오르는데 용건 없는 대화를 마치기가 아쉬워 찬물도 마셔보고 세안하고 몸 방향을 바꾸다 결국 휴대전화를 쥐고서 기절하는 건 타고난 다정과 우정만으로 일축하기 힘든 정 같아요 멋쩍으니까 괜히 자니? 자는구나 잘 자 구애인 시늉도 해야지 네 답을 기다렸지만 애타지 않은 척 최대한…… 아 모르겠다 휘성아 잘 자 키는 더 크지 말고.
 
156. 몸은 작아져도 두뇌는 그대로이지 못한 어린 이휘성, 얌전하긴 한데 티 내지 않는 고집이 강해서 도윤우 형이 마음에 들면 미간 꽉 막힌 얼굴로 붙들 것 같죠 또래에 비해 큰 키 탓인지 어려서부터 더 성숙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적지 않았을 거라 추측해 봅니다. 그래도 또래와 다를 뿐 비눗방울 불면 터뜨리고 싶고 강아지도 만져보고 싶고…… 여러 가지를 함께 했지만 도윤우가 가장 먼저 데려간 건 놀이공원이에요. 이유요? 이제 이 아이는 몇 년 뒤 탑승할 수 없는 체격이 될 테니까…… 겸사겸사 사진도 많이 남긴 선물 같던 하루 5월 6일이 되자 분명 전날까지만 해도 품에 코 박고 자던 친구는 상황 파악 덜 된 까치집 상태로 황당하게 기억을 더듬었다고.
 
星 …… 뭐지? 이게 필름 끊긴 건가?
雨 나 아니면 싫다던 애는 어디로 가고……
星 걔 아직 어디 안 갔는데, 윤우야.
雨 야, 야. 징그러워.
 
157. 아기들은 눈만 가리면 본인이 안 보이는 줄 아는데 아기 도윤우가 눈 가린 채 힘없이 웅크리자 휘다닷 달려간 아기 이휘성이 앞쪽에 마주 웅크려 눈 가리면 어떡하지 애보다 조금 더 크다는 이유로 숨을 겸 가려주려고…….
 
158. 일반 스케이트장에서도 본능적 스핀을 돌던 도윤우는 연습복이 아님을 잠시 잊은 상태였고 기어이 가슴팍까지 자체 크롭티가 되자 말벌아재처럼 달려들어 가려준 이휘성은 그날 빙판 위에 서는 법을 터득했다. 꽁꽁 얼어붙은 빙판 위로 이휘성이 달려듭니다.
 
159. 그래도 도윤우는 유년기부터 탄탄한 팬층을 쌓아서 팬 메이드 굿즈를 받아봤을 텐데 개중 하나가 얼굴 박힌 슬로건일 때, 이휘성은 슬쩍 야외 체육 수업마다 수건인 척 어깨에 두르고 지나쳐 뒤늦게 눈치챈 도윤우에게 빼앗긴 적 한 번쯤 있겠죠. 부끄럼 타면서도 뿌듯하게 팬들이 준 선물을 자랑하곤 하지만 그래도 이휘성 마음에 든 건 도윤우의 본 경기 영상. 그야 네 웃는 얼굴이 화면을 채우니까.
 
星 근데 이건 뭐야? 초섹시 얼음 왕자?
雨 야, 그거 읽지 마……!
 
160. 5월은 행사도 많고 가족에게 얼굴 비출 일도 잦은 달 도윤우의 부모님은 해외 거주 중인 관계로 학교만 가지 않을 뿐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기 있을 리 없는 그림자가 구부정하게 기웃거리더라고요.
 
星 너 외로울 것 같아서.
雨 진실은?
星 …… 체중 조절 텀이 좀 버거워.
雨 집밥이야, 빵이야.
 
장난기 어린 대화가 오가도 내심 기쁘겠죠 평소 스케줄 대로면 쉴 틈 없이 연습하고 뻗었을 테지만 그날은 정신없게 놀다 잠들 테니까. 다만 굳이 노트북을 사양하고 안 그래도 좁은 침대 옹기종기 누워 휴대폰으로 영화 보다 사이좋게 한 번씩 코 박고 나서야 그만 보고 자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바보들…….
 
161. 한국인에게 메이드의 날 개념은 없지만 대신 오므라이스 위 케첩은 얼마든 뿌릴 수 있죠. 이휘성은 구불구불한 선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지만 그만큼 뿌리면 짜다고 접시 한구석에 초장처럼 담는 사소한 성향 차이. 서로 먹는 양의 차이부터 큰 데다 볶음밥 자체를 케첩으로 볶아 소스 없이 나눠 먹는 것도 좋아할 듯해요 남고생이 원하는 건 아름다울 미보다 맛 미의 볶음밥일 뿐…… 어차피 이휘성은 오므라이스 위에 강아지를 그려줘도 모르고 먹더라고요 휘성 피셜 뭔지 모르겠길래 그냥 먹기를 택하다.
 
162. 장소는 꼭 우리가 사랑했던 체육관이어야 하고 슛이 주력인 포지션은 아니지만 그날 네게 줄 건 꼭 들어갔으면 해 나란히 팩 붙이고서 산책길에 본 강아지 얘기를 할 때 난 너보다 이른 준비를 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애들한테 배울 걸 그랬다 상관없나 네가 좋아하는 건 나니까,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유성보다 귀한 말이니까 넌 무조건 우리가 사랑하는 대답만 해줘.
 
163. 며칠 전 꿈에서 이휘성은 어릴 때 쓴 그림일기를 여태 본가 책장에 보관 중이라고 나왔거든요. 대전 내려가 하룻밤 신세 지게 된 도윤우가 발견한다면 이휘성의 드문 수치스러운 표정을 볼 수 있을 듯해 귀엽죠 얼룩덜룩하게 색칠한 농구공투성이면 어쩌지. 옛날 앨범만 봐도 이휘성은 또래보다 키가 조금 더 크고 휘다닷 움직이는 걸 좋아했는데 아기의 오밀조밀 얼굴만 보다 옆에 웬 이메다 친구가 땀을 삐질 흘리고 있었으니…… 실은 도윤우도 유치원 때 쓴 그림일기 아직 갖고 있어요 다음 날 보여주며 우린 역시 비슷하구나 동지애 느끼기.
 
164. 오늘처럼 춥고 바람 불고 이휘성의 우산이 위태로운 날 저만치서 바람과 싸워가며 등교한 도윤우는 구원처럼 보였죠 냉큼 그 우산 속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휘성 옆에 붙어 우산 접는 도윤우……. 날 구하러 온 줄 알았더니 너도 같이 잡힌 거였나 옹기종기 우산 하나 쓴 채 등교했지만 이미 둘 다 사방팔방 튄 빗물 때문에 머리며 가방이며 쫄딱 젖어 스포츠타올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고.
 
165. 우산은 뒤집혔고 근처 정류장에 들어갈 때까지 철퍽대는 신발을 이끌고서 겨우 한시름 놓았다 싶으면 또 이 뭐 같은 상황에도 너와 나란히 망했다는 생각은 별난 놈처럼 웃게 한다. 쫄딱 젖은 양말은 꿉꿉하지 피부에 엉겨 붙은 교복이며 머리칼이며 뭐 하나 안 찝찝한 구석이 없는 지금 그래서 철딱서니 없게 털어버린 건가 그보다 이런 날 먹는 컵라면 맛있는데 안 먹어봤어? 이따 가서 먹자 난 먹고 한숨 잘래 오늘은 뻗을 것 같아 알람 잘 맞춰둬.
 
166. 첫 키스의 맛 플로우를 보고 생각했지만 기실 질퍽한 살덩이와 빠른 맥박 탓에 분위기고 맛이고 그런 사변적 낭만은 못 찾을 것 같아요 그나마 느낀 건 뜨겁고 미끈거린다 경기할 때와는 다른 상성으로.
 
167. 진실로 하고 싶던 말을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에 갇힌 둘 처음엔 네 침자국 쩐다 말 거니까 전봇대 그림자였다 고해성사가 이어졌지만 문은 미동조차 없었고, 결국 슬쩍 밀어보던 도윤우의 마지막 수단 네가 나한테 왔으면 좋겠어. 한마디 말에도 사람 관점마다 해석이 갈리는데 나한테 왔으면...... 와줬으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되묻기 전 도윤우는 이미 얼굴 볼 자신이 없어 질주했죠 그리고 뒤를 쫓는 친구가 진짜 무서워서 한 시간 동안 추격전이 벌어졌습니다.
 
星 윤우야 넌 잡히면 할 말 되게 많아야 할 걸.
雨 야잠깐만너진짜본질을잃었어.
 
이메다 친구가 전력으로 뒤쫓는데 진짜 얼굴 마주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이 또한 관점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될 문장이 되어버렸고...... 기어이 생포한 도윤우를 질질 끌고 들어간 이휘성은 평소보다 만족스럽되 힘든 표정이었습니다 근데 우리 어차피 같은 반이잖아.......
 
168. 어제 23일 거북이의 날 도윤우는 어김없이 바다거북 다큐를 보다 잠들었을지 궁금해지는 중 다음 생에 뭐로 태어나고 싶냐고 물으면 꾸준히 거북이로 태어날 거라고 답하는 피겨 선수. 네가 거북이면 난 뭐로 태어나 묻는 이휘성에게 넌 그냥 크고 널찍한 바다나 되라고 짠물 얹기 그럼 찾기도 쉬울 거 아냐 지금처럼.
 
星 깊어서 별로인데.
雨 ...... 아. 거기가 핵심이야?
 
169. 취기로 무르게 구는 이휘성 전봇대에 머리 찧고 싸맨 채 주저앉는 거 서로 어이없어서 깔깔 웃다 한결 나른해진 얼굴을 하나씩 관찰하고 그래서 또 한 번 부속된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면 우린 여태 유지한 게 우정뿐만이 아닐까.
 
170. 여전히 사랑과 우정의 차이를 모르겠고 잠기기엔 수면이 절실한 도윤우가 누굴 만나도 서로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너스레를 떨면 더한 것도 기꺼이 알려주는 게 연애라는 다른 친구 말에 얼마든 열린 가능성을 확보할 때. 건방진 치기였다는 성찰과 별개로 수치스러웠다 나는 왜 너의 비가역적인 이유가 될 것이며 제삼자의 개입이 없다고 당연시했는지, 친구라는 사람이 스물아홉도 서른아홉도 그대로인 도태의 일종을 바란 사실은 많은 의미를 남겼으나 이는 외적으로 표가 나지 않았다. 여름을 의태해 이따금 덥게 호흡하고 삼킬 몫은 그야말로 도윤우만 정신 차리면 된다는 소리였다.
 
171. 초코칩쿠키 통에 우유 붓고 말아 먹는 이휘성 잠도 겨우 깼으면서 왜 아침 댓바람부터 쿠키를 뜯냐고 물었더니 그냥 어제 유독 먹고 싶었어 만족해하는 얼굴이 보고 싶다.
 
172. 슬슬 내리쬐는 볕이 뜨거워진다 손 그늘을 핑계 삼아 곁눈질로 너를 훑어도 무관심한 시기고 우린 여름의 이치처럼 뜨거울 테니 경기 끝나고 만나 연락해 그 시간엔 아직 해가 있을 거야.
 
173. 도윤우는 얼른 추위가 끝나길 바랐지만 생각 외로 이르게 찾아온 더위 탓에 네가 하도 소원하니까 더워졌잖아 땀 흘린 체육복 털며 농담 치는 이휘성. 나한테 그런 힘이 있었으면 야외 수업 없애달라고 빌었겠지 멍청아. 선풍기 탈탈 돌아가는 소리와 정신없는 남고의 체육 직후 쉬는 시간, 둘 다 앞머리 까고 에어컨 명당인 자리에서 머리 대신 웃통 깐 놈들 구경하는 꼬질꼬질 남고생 여름.
 
174. 이렇게 모호하게 더운 날이면 한 명은 나시 한 놈은 반팔 입고 앉은 자리가 뜨거워서 자세를 여러 차례 바꿀 때까지 함께 ott 시리즈 정주행하고 게임해야 하는데. 둘 다 공포물에 개의치 않는 편이지만 더위로 땀 찬 뒷덜미를 슬쩍 누르고 쫄려? 해볼 것 같죠. 이내 물끄러미 보며 넌 내가 휘성이 같나 봐, 한 번의 대꾸로 정적 일으킨 이휘성.
 
雨 …… 뭐야?
星 오…… 도윤우 쫄았어?
雨 아니…… 진짜 노잼이었어.
 
너스레 떨듯 그 애 입에 수박이나 퍼먹일 뿐이었지만 아주 조금 당황했던 도윤우는 오늘 애보다 내가 먼저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여덟 시에도 해가 뜨는 계절이 가까워져서 다행이다.
 
175. 공중전화 소재 보고 싶었는데 들어가기도 전 입구컷 당해서 욱여넣은 식빵처럼 낑긴 이휘성의 존엄성을 위해 잠자코 휴대전화를 쓰도록 하자.
 
176. 여름의 단골 벌레가 많은 시기죠 잘만 걷다 벌레 침투로 인해 동시에 코 찡그리고 휘적거리는 둘. 나무처럼 보여서 돌진하는 거 아냐? 넌 머리에 벌레 숨어도 모르겠다 받아치더니 도윤우 벌레 먹지나 말라고 입 틀어막는 이휘성.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듯해도 기숙사에서 어떤 선생의 존재가 드러나면 숫자로 쳤을 때 우리가 이겨 에프킬라 방역할 극단적 이성이 좀 귀여워요.
 
星 (사진)
星 우리 주장 바뀌었어
雨 미쳤나
雨 뒤에 지국민 나만 보여?
 
177. 둘 다 운동부가 아니었다면 학년마다 동아리 고를 때 쟤가 신청하는 거로 슬쩍 끼워 맞춰 넣고 넌 왜 자꾸 나 따라 하냐 시시덕대는 걸 구경할 수 있었을까.
 
178. 이제는 잠든 애 얼굴을 한참 쳐다보지도 않고 곁눈질로 잠들었다 싶으면 하던 거 마저 하며 머리칼 만지는 장난만 칠 사이. 왜 안 깨웠어? 입 벌리고 사납게 자길래.
 
179. 시즌 아니어도 틈틈이 뛰는 러닝마다 쟤는 체격이 저만큼인데 어떻게 이런 속도를 내는가, 애는 저렇게 말라놓고 이 속도는 어디서 나오는가 의문이 서로에게 여전할 듯하죠 증량 감량 시기도 종종 맞물리는 편.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은 같아서 둘 다 단백질 우적우적 씹고 기초 체력 웨이트 봐주는 선수미가 좋아요. 지상이 끝나면 온아이스 훈련 위주인 도윤우를 보기 위해 휘벅휘벅 삼만리 구경까지 가 주시하던 이휘성은 꼭 선수끼리의 걱정만이 아니었겠지만, 그건 도윤우도 걔한테 마찬가지일 거고.
 
180. 이휘성의 역광을 보고 싶다. 슬쩍 입꼬리 한쪽만 올리면 뭐 하는 짓이지 얼빠진 눈으로 흘기다 막상 웃으라고 시키니까 또 잘 못 하겠다고 민망해할 텐데 사실 이미 보고 싶은 만큼 충분히 구경했다고 하지 않으려고. 역광을 등지고서 멋쩍게 앞머리를 털거나 곧은 손가락끼리 얽어 떠드는 면이 차례대로 부각된다. 도윤우는 다른 생각을 엄두도 못 낸 채 시퀀스가 끝난 뒤에도 못내 곱씹었다. 뭉툭한 손톱 까슬한 피부 열망한 체온.
 
181. 이맘때 주전부리는 죄다 녹거나 끈적이죠 이휘성이 들고 다니는 사탕도 예외 없이 껍질에 찐득하게 붙어 새삼 기온을 체감하는 동안 냉큼 맛은 똑같다고 이로 사탕 까먹는 도윤우. 의외로 이휘성은 어릴 때부터 박하사탕 특유의 싸한 맛을 못 견뎌서 여전히 먼저 찾지 않는데 레몬과 박하 맛을 선호한 도윤우 때문에 하나둘 먹다 보니 괜찮아졌다는 반전은 없고 그냥 초콜릿 먹는 편입니다.
 
182. 이휘성은 한두 번쯤 고개 숙인답시고 우산 안 쓴 애 머리로 빗물 주르륵 쏟아져서 식겁한 적 있을 텐데 꽤 자주 본의 아니게 우산으로 윗공기 그 친구를 몇 차례 찌를 뻔했기에 이 정도는 약과인 업보다 수용하며 탈탈 터는 도윤우.

 

183. 이휘성의 역광을 보고 싶다. 슬쩍 입꼬리 한쪽만 올리면 뭐 하는 짓이지 얼빠진 눈으로 흘기다 막상 웃으라고 시키니까 또 잘 못 하겠다고 민망해할 텐데 사실 이미 보고 싶은 만큼 충분히 구경했다고 하지 않으려고. 역광을 등지고서 멋쩍게 앞머리를 털거나 곧은 손가락끼리 얽어 떠드는 면이 차례대로 부각된다. 도윤우는 다른 생각을 엄두도 못 낸 채 시퀀스가 끝난 뒤에도 못내 곱씹었다. 뭉툭한 손톱 까슬한 피부 열망한 체온.

 

184. 이맘때 주전부리는 죄다 녹거나 끈적이죠 이휘성이 들고 다니는 사탕도 예외 없이 껍질에 찐득하게 붙어 새삼 기온을 체감하는 동안 냉큼 맛은 똑같다고 이로 사탕 까먹는 도윤우. 의외로 이휘성은 어릴 때부터 박하사탕 특유의 싸한 맛을 못 견뎌서 여전히 먼저 찾지 않는데 레몬과 박하 맛을 선호한 도윤우 때문에 하나둘 먹다 보니 괜찮아졌다는 반전은 없고 그냥 초콜릿 먹는 편입니다.

 

185. 도윤우네 가기 직전까지 훈련이었던 탓에 잠깐 눈 붙이고 점심 먹기로 한 이휘성. 불편한 침대 대신 거실 바닥에 이불 깔고 뻗을 동안 방 정리를 마치고 소리 죽여 나와봤더니…… 안면을 거의 다 덮은 강아지의 엉덩이를 팡팡 쳐주느라 숨 막혀 죽는 친구는 어떻게 해야 하지.

 

雨 뭘 받아주냐? 다음부터 그냥 가라 해.

星 네가 매정하니까 나한테 오지.

雨 만만해서 좋겠다.

 

결국 한숨도 못 잔 채 일어나 대신 자는 달래를 두고 배부터 채우기로. 어리광 막내가 탑인 오빠들은 늘 잠이 부족하다 다음엔 산책 많이 시킬게.

 

186. 우여곡절 밝힌 뒤 어떤 사이도 아닐 때 괜히 평소처럼 지내기 멋쩍은 도윤우가 점심시간에도 엎드린 채 자는 척을 한다면 그닥 망설임 없이 머리를 헝클리고 일어날 이휘성. 너 안 자는 거 알아, 이따 보자. 평소 곯아떨어질 때와 똑같았는데 눈치가 그 정도였나 홧홧한 머리는 떠나고서 한참 뒤에야 정리하며 다른 학우와 밥을 먹겠죠. 급식 줄 서다 이미 착석해 식사 중일 얼굴과 마주치지 않게 뒤를 도니 조금 전 확신에 찬 손길이 이해되더라고요. 애초부터 듣든 말든 던진 도박이었던 거지. 마침 보란 듯이 나는 또 안 자고 있었고…….

 

187. 물복 딱복으로 갈린 적 있을지 궁금하다 둘 다 과일이면 가림없이 먹겠지만 당도가 비교적 높은 물복을 선호하는 이휘성과 달리 여태 먹던 게 딱복인 줄 모르고 주는 대로 먹음을 주장한 도윤우

 

188. 각 잡고 세팅해서 새벽까지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경기를 다 보겠지만 시간 지날수록 점점 무너지는 자세와 늘어나는 하품……. 그래도 올림픽만큼은 못 참아서 둘 다 아버지의 자세로 드러누워 관람하다 점수 딸 때면 벌떡 깨고 눕기 무한 반복할 것 같죠. 아침 운동 가야 하는데 죽을 맛이겠다.

 

189. 난 왜 열아홉씩 된 애들이 뭐 하나 째고 놀이터에서 시소나 그네 대충 타다 슬슬 가자 더 늦으면 진짜 죽을 듯 가방 챙기는 게 보고 싶지 나란히 앉은 그넷줄 밀어주며 묵묵히 경청하던 휘성의 그네는 덜렁 조용할 텐데.

 

190. 이휘성은 귀를 기울이고 도윤우는 시선에 담고 빠짐없이 서로를 메는 동안 엉겨 붙는 미완성의 이야기들, 윤슬을 보기 좋게 흉내 낸 반투명한 그림이 앞선 글자를 가렸는데도 우린 우리가 했던 약속을 잊기 어렵겠지. 내년도 내후년도 열아홉일 수는 없는데 이쯤에 온점 찍는 게 보기 좋지 않나. 또 모르지 어떤 이야기는 미완성인 채로 둬야 오래 상상할 수 있으니까. 우리의 완성은 그런 거로 해.

 

191. 더워서 뜨거워진 목덜미에 주물럭대던 뽕따 넣더니 할미꽃 되지 마라 일으키는 도윤우. 아이스크림 건네받자 또 익숙하게 첫입은 도윤우 주고 끄트머리 까서 껍질까지 씹을 기세로 와작거리는 이휘성의 소다 맛 여름나기. 원래 이런 형태의 아이스크림은 끝 쪽을 상대한테 떠넘기고 본인 먹기 바쁘지 않나 처음엔 의아했었지만 이젠 아예 잘 나오게 주무르기만 하다 이휘성이 다 먹었을 때 도로 건넬 것 같죠. 하여튼 이상한 데에 배려가 있어 애는.

 

192. 영화처럼 별이 비처럼 쏟아지긴 어렵지만 까마득한 하늘 생중계를 보며 하나 떨어질 때마다 연락하고 그 빌미로 실없게 주고받는 오후 열한 시 경의 시간이 더 좋았을 게 분명하다.

 

193. 본가 갈 때마다 흡사 빵셔틀처럼 빵 부탁 자주 받는 이휘성이나 누나 때문에 먹지도 않는 음식들 픽업하는 도윤우나 교차로에서 마주치면 은은한 공감대 형성하고 바리바리 챙긴 몫 중 네 것도 있다 꺼내는 착한 애들

 

194. 경기에서 이휘성도 세레머니 같은 걸 할까 집중적으로 본 결과 일희일비하지 않고 원중고 승리로 끝났을 때만 해피휘성 해피캣 휘다닥 뛰는 거 직관하자마자 주체할 수 없는 입꼬리 상승하는 도윤우. 이 귀여운 놈 뭐지 아무튼 멋지긴 했다.

 

195. 거창한 진로까지는 아니고 학교 밴드부처럼 보컬과 기타로 이어지는 이야기도 종종 보고 싶어요 같은 반일 뿐 이름만 아는 사이에 너라면 걔 데려올 수 있지 않겠냐 등 떠밀린 이휘성. 네가 자주 듣는 음악 말인데 우리 전에 공연했었어. 알아. 보러 왔어? …… 그걸 보러 갔다고 할 수 있나? 맞는 듯 안 맞는 대화가 꾸준히 이어지고 절대 안 불러 버티던 도윤우가 고집을 내려둔 날 애랑 진짜 같이 서면 좋겠다 타인의 다짐까지 굳어진 순간.

 

196. 무화과에 꽂혀서인지 둘의 먹는 방식도 궁금해졌어요 바나나처럼 껍질 손질하는 도윤우와 껍질째 먹을 듯한 이휘성……. 꽤 달길래 먹어보라는 권유로 까고 있었는데 이미 앤 우물우물 먹는 상태였고 그냥 튀어나온 꼭지 떼주고서 맛있어? 마히다. 이런 바보 같은 대화만. 대부분 무화과는 통으로 먹는 게 맞지만 도윤우는 까끌거리는 식감이 싫다고 도벅도벅 안쪽만 먹을 스타일.

 

197. 해가 질수록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조차 도윤우에 비해 한 뼘 이상 큰 이휘성은 그가 한눈팔 때 슬쩍 뒤로 빠져 큼지막한 그림자로 그 애를 한 움큼 삼켜보고 충만한 여름을 보낸다. 네가 내 뒤에 있으면 그림자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올려다본 얼굴의 역광을 보며 됐다 들어가자 또 삼킬 도윤우. 사실 아무것도 된 게 없으면서 너한테는 제한 없이 어물쩍 넘기기나 하고.

 

198. 정신없을수록 날짜 개념이 무뎌지는 이휘성 급식표를 확인하며 언제부터 9월이었지 멋쩍은 와중 너 빼고 다 9월 산다던 도윤우는 벌써 겉옷까지 챙겼죠. 우리 아직 해가 밤보다 긴데 넌 왜 혼자 11월이냐 받아치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星 윤우 너 안 더워?

雨 교실만 추워서 미리 챙겼어.

星 그 불쾌한 병아리 담요는 뭔데?

雨 우리 누나 취향.

星 불쾌한 건 담요가 아니라…….

 

雨 야.

 

199. 도윤우는 여름에도 뜨거운 음료를 마실까 더워 죽어도 뜨거운 콜드브루 픽업해서 나올 것 같은데 나름 여러 생각 갖고 기다리던 이휘성에게 얄쨜없이 시원한 티를 주문해 본의 아닌 실망감을 안긴 일화. 지금은 서로 선호하는 취향을 당연한 듯 파악했지만 초창기엔 의외라고 여긴 부분이 많았겠죠 익숙해지기까지의 이례적인 과정이 좋아요. 빵의 단맛은 싫어하면서 심심한 단맛을 좋아하거나…… 어떤 게 입맛에 맞는지 애라면 잘 먹겠다 유추하기도 하고. 난 또 너를 잘 아는 사람이 되는 거지.

 

200. 한밤중 드물어진 매미 소리가 아쉬울 때면 이휘성은 주특기 매미 울음 구분법 영상을 켜 도윤우에게 굳이 또 황당한 반응을 산다. 잘 보이지도 않는 창문 너머의 나무를 응시하듯 구는 게 무슨 생각 중인지 알 수 없어도 생각을 돌리는 것쯤은 얼마든 할 수 있으니까. 도윤우가 변화에 예민한 건 맞지만 정작 지금은 미친 바람 후드 꺼내야겠네 생각한 것뿐이라고.

 

201. 그 철저한 애가 웬일로 아침부터 립밤 잊었다길래 손등에 먼저 닦아내듯 문질러 건넸더니 두 손 주머니로 쑥 넣고 직접 해달라더라 귀찮댔나 그게 그럴 수 있던가. 당연히 해줄 거라는 안이한 믿음이 채근한 거겠죠 친구 범위 내에 욕심 내기 싫어하면서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게 우스운지 티 나지 않는 힘도 꾹 주고. 우리가 거기서 거기인 보습용 립밤을 사용한다는 걸 아는데도 미적지근한 단내가 퍼질 동안 주머니 속 립밤을 굴리며 이미 있던 것에 없는 척 고마워해야 할 도윤우. 좀 그런 사이잖아요 이미 본 영화도 네가 처음이면 재탕 뛰자 권하고 같이 먹을 수 있는 시간까지 기다리고 여분의 우산을 하나 더 챙기는 그냥 한 번 더 귀찮아져도 괜찮은 친구요. 차이라면 네 배려에 가끔 나는 작정한다는 것 그래서 다 됐다고 엄지 끝으로 묻어난 양을 닦는 너한테 잠깐 정신 나간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휘성아.

 

202. 명절이라서 이휘성도 대전 내려갔겠다 본가 갈 일 없는 도윤우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연습하고 운동하는 동안 반가운 이름이 휴대폰에 뜰 때마다 이거 싸갈게 이거 맛있음 이거 봐라 사이버 추석 온기가 공유되는 중. 우렁찬 짐 들고 오느라 고생했다 건네받으면 그게 다야? 서로 마주 보더니 낯간지럽게 포옹하고 짓궂게 놔주지 않기.

 

203. 송편 만들면 일단 둘 다 버벅거려도 정석대로 만들 것 같긴 한데 어차피 배 안 찰 크기 처음부터 크게 만들면 안 되나 생각하는 이휘성과 거북이 등껍질 모양 만들고 싶다 멍때리느라 기계적으로 생산하는 도윤우

 

204. 아침부터 교실에 이휘성이 앉아 있으면 그날은 왠지 좀 운이 괜찮다고 느끼는 도윤우. 안 갔냐? 1교시 끝나면 모이기로 했어. 하필 국어인데. 뭐 별 의미 없는 대화 나누고 서로 할 것 하면서도 시선을 돌리면 그 애 옆태가 가끔 흘겨보는 눈이 막연히 편하겠죠. 신기해요 친구와 내내 떠들며 한 번 마주친 애를 의식하는데 그 편하다로밖에 정의되지 않는 게. 종례를 마치고 코치님과 대화하기 빼곡한 급식실에 줄 서기 체육관 방향으로 돌아 조퇴하기 바쁠 때 제대로 된 대면도 어려운 비껴간 타인끼리 안도하는 사이 그래도 봤네 내일은 더 보고 싶다.

 

205. 가을처럼 어중간한 계절엔 여전히 반팔 져지 입는 이휘성과 베이지색 후드 눌러쓴 도윤우의 계절감 상실 콤비를 볼 수 있어서 좋다 가끔 재채기하는 휘성에게 네 몸은 가을이라잖아 등 떠밀어 실내까지 채근할 일교차

 

206. 이휘성이 재채기할 때 무의식 습관처럼 bless you 해주던 도윤우 종종 빼먹으면 왜 안 하지 쳐다보는 얼굴이 어이없겠다 왜 보는 건지 영문도 몰랐지만……. 

 

雨 왜. 휴지 줄까?

星 오디오가 좀 비지 않았어?

雨 재채기 소리 작았냐고?

星 아니. (;) 네가 얘기해 주는 거.

雨 …… 아하.

 

雨 민망해. 나 이제 그거 못 하겠다.

星 대체 어디서 수줍음을 타는 거야?

 

207. 난 다코야키 반입 깨물 때 문어만 빠지고 밀가루 반죽이 덜렁 남아도 맛있냐고 더 먹이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근데 이제 이휘성은 한입에 넣고 도윤우는 아예 안 먹는 사람이지만. 어쩌다 먹게 되면 최대한 많이 먹이고 싶어서 꼬치 하나에 다코야키 세 개 꽂고도 모른 척 한입 컷이다 할 이휘성. 너 많이 잡숴라. 아. ;

 

208. 가사를 신경 써서 듣는 도윤우에게 음악 추천 받을 때 종종 널브러져 가사 찾아보는 이휘성. 피상적인 글자라도 의미 두는 그 버릇이 옮은 건지 예상한 문장이 없으면 덜미 잡아 장난도 못 치고 아쉬워진 적도 있죠. 그 애 성격과 사랑다운 음악은 안 어울리지만 듣다 보면 고의와 실수가 훤한 선정이기도 해요. 그렇지 않대도 상관없어 그럴 리 없으니까.

 

209. 이제 맨발로 바다를 환영할 수 없는 시기겠다 근데 넌 가끔 나를 무모한 생각에 잠기게 하더라 그래서 너를 보기만 해도 모든 겁이 모순되게 늘고 희석되는 것 같아. …… 아무 생각 안 했는데? 그보다 너희 숙소 섬유유연제 바꿨냐 지난번이랑 좀 다르네 동복 입은 건 오랜만에 본다 여기 짧아지지 않았어? 뭘 먹고 크는 거야 대체.

 

210. 충분히 자전거로 앞질러 갈 수 있으면서 걸리적거리는 수단밖에 되지 않는 취급처럼 질질 끌며 도윤우와 걸음 맞추는 이휘성, 건너편 아는 얼굴이 어디 가냐 쌩 스쳐도 손만 휘젓고 부러 한 바퀴 더 돌아가는. 우정도 사랑과 닮게 설명할 수 있지만 당장 그것 때문에 의도한 건 아니야 단순히 너와 가는 길이 즐겁고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래. 넌 안 그래? 하룻밤을 더 자야 만날 수 있는데도?

 

211. 연습 힘들다고 빙판에 누워본 적은 없으니까 훈련 도중 잠깐 앉는가 싶더니 그대로 팀원들과 누워 쉬는 이휘성을 보면 대화는 평소와 다름없어도 잠깐씩 그 행동을 의식한 도윤우. 넌 누웠을 때 까마득한 천장이 먼저였을지 찌푸릴 정도의 조명이 먼저였을지 그날 침대가 아닌 바닥에 누워 그 애와는 현저히 다른 위를 응시하며 얼마 못 버티고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 갔죠. 아마 근처에 야외 골대가 있을 텐데 이휘성을 데리고 와야겠다 좀 다를 것 같기도……. 이불 안에서 서늘한 피부를 웅크려 주먹 쥐다 까무룩.

 

212. 이휘성이 제철 생선 포획하기 위해 시동 걸 때 역에서만 보이는 희소성 델리만쥬파 도윤우는 한결같이 슈붕과는 다름을 주장하며 누구 때문에 천 원짜리 몇 장은 꼭 넣고 다니는 편. 붕어빵인 줄 알고 산 잉어빵, 큰 차이보다 찹쌀과 고루 많은 팥만 다른데 오히려 마히다 입에 문 생선 쟁취 꼴을 하고도 친구의 느끼해진 속을 뻔히 눈치채서 재깍 물리면 내놓으라고 하는 이휘성.

 

雨 (근데…… 느끼하네.)

星 (벌써 물린 얼굴이군…….)

 

알잘딱깔센 무한 감사.

 

213. 소매 길이로 계절을 알아챌 때 이휘성은 여름보다 길어진 도윤우의 머리로부터 실감합니다 집중하느라 턱 괸 채 숙인 앞머리가 거슬리지 않는지 살짝 넘겨주면 드러난 시선과 형언하기 힘든 침묵이 조금 이어지고. 희한하게 여름마다 벌겋게 홧홧하던 뒷덜미는 눈에 띄지 않더라 너는 무슨 색일까 감추려고 부러 기른 걸지도 모르지만.

 

214. 연인으로서 합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 재미없을 것 같은 성격들이지만 둘만 아는 의존성과 견인한 신뢰가 좋다 타인의 개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된 이유이기도 해서. 도리어 내가 모르는 네 모습이 있다면 서운할 걸 그 사람이 뭐라고 너를 더 오래 지켜본 나보다 너의 예외가 되어야 할까. 사귀자는 의미가 아니야 나는 너만 있어도 충분한데 너는…….

 

215. 도윤우는 그런 사람 남들이 눈길 두지 않는 사소한 손끝에도 무게를 싣고서 부연 깃털처럼 날아오르던 늘 모순된 선수, 투명한 듯 웃으며 배웅한 손을 내가 돌아설 때까지 내리지 않던 역설적인 친구. 그 섬세한 성격에 왜 나 역시 질량의 질(質)과 량(量)을 안다고 생각하지 못할까 도윤우는 왜 나를 넘겨짚지 않고도 간과할까 기억이 변형될 때까지 곱씹는 너만큼 네가 가르쳐 준 불투명한 산소의 순환은 나의 너울이 되었는데.

 

216. 삶이 고되지 않고 예측대로 고르게만 흐르면 인류는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 거야 아예 이변이라는 말부터가 없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인류는 분명 친숙하고 안정된 것을 추구함과 동시에 권태로워지는 생명체라서 변수를 탐낼 수밖에 없다. 윤우가 그곳에 가 휘성을 만났고 계획되지 않은 앞날에 대범해지듯이 인류에게 끈덕진 정이 있는 한 돌아간들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들은 모두 천체가 먹다 만 위성 같다.

 

217. 피크민을 열심히 하다 보니 대뜸 꿈에서까지 피크민이 된 도윤우에게 과일 받다가 자각몽인 것 알면서도 현타 온 이휘성 어딘가 맹하고 바보인 건 본인을 더 닮았는데 친구를 피크민으로 모에화 하네.

 

218. 겨울을 기다린 적 없는 애가 손끝 춥지 말라는 능청스러운 핑계 삼아 붕어빵 봉투나 안겨주면서 이제 천 원 없어 눈썹 휘는 얼굴 한 번 보려고 서늘해지는 흔적을 달갑게 여기는 게 좋다 그러니까 너만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면 나는 겨울에도 아카시아 향기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야.

 

219. 팬에게 선물 받은 꽃말을 접하면 기껍고 신기하게 여기던 도윤우. 그래 봤자 일가견이 있나 뭐 우리가 꽃마다 붙은 근사한 소문까지 확인하며 줄 리 없으니까 늘 심드렁한 편이었는데 가끔 이휘성을 연상케 하는 사물에서 서서히 잔잔히 고요히 침잠되기도 해요. 그렇다고 이건 마치 너야, 처럼 다소 오글거리는 꿈을 꾼 건 아니지만, ...... 아닌가? 아무튼. 다채롭게 쑥덕거리는 말에 귀 기울여 말아 고민하다 결국 단색 꽃다발을 사 이휘성을 축하했던 어느 날. 여전히 그때 내가 무슨 꽃을 선물한 건지 몰라 축하할 마음만 앞서 무작정 고른 거였거든. 그래도 짐을 떠넘겼지 꽃다발은 맡기지 않을 만큼 좋았잖아. 꽃말이라는 건 생각보다 별거 없는 것 같아. 누군가는 그날 사물을 행복에 빗대 설명하듯이.

 

220. 햄버거 4개가 대식가의 양이라면 이휘성은 두 개쯤 먹고 관둘지 일반인도 유난히 잘 들어가는 음식이 있듯 빵 종류가 남보다 잘 들어가는 편이어도 귀엽겠다 와퍼 먹을 때 행복한 성장기 소년

 

221. 우리의 시간이 만약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던 허상이라면 그래서 어떤 것도 정립되지 않은 세계를 살게 된다면. 결국 인간은 자연 앞에서 무력할 뿐이지만 역설적으로 자연에게 인간의 생태가 재해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증거로 모두가 멈추니 자연은 다시 새침하게 피어나잖아. 그런 상상해 봤어? 농구도 피겨도 학생의 본분도 다하지 않는 우리 말이야. 난 막연히 너와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어. 몽골은 좀 먼데 이제 멀고 느린 개념의 부정적인 쓰임처가 있을까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오래 별을 보고 오래 그곳을 향해 가 오래 회피할 뿐인데 줄곧 이런 허상을 기다렸던 듯이 희한할 만큼 안심하며.

 

222. 간간이 보이는 나도 남자니까 멘트 말인데 둘 중 누가 그 말을 하든 숨길 의향 전혀 없는 사색을 보이거나 그래서 여기(남고)에 있는 거겠지 떨떠름하게 대꾸하고 마는 점이 웃긴다.

 

星 너 뭐…… 여자로 봐달라고?

雨 진짜 대가리 아프다.

 

223. 이휘성은 핼러윈인 줄 몰랐는데 잘만 다른 주제로 떠들다 대뜸 초콜릿 쥐여주더니 줬으니까 잡아먹지 말라던 도윤우의 우스갯소리가 어처구니없어서 뺨 깨무는 시늉 하고 초콜릿 받아먹은 날. 가끔 이런 차이가 좋아 틈 없이 들어찬 단맛이 유쾌할 정도로. 다른 애들은 앞으로도 네가 뭐든 감흥 없어 할 줄 알겠지만 뜻밖에 넌 시시콜콜한 날짜를 너답게 추억할 줄 아는 사람이고, 그 대상은 나일 테니까.

 

星 근데 그 말 사탕 말고 떡 아니야?

雨 어차피 의도만 같으면 상관없잖아.

星 죽을 건지 살 건지였나.

雨 그건 고뇌하는 다른 분이고…….

 

224. 처음에는 대학, 추후에는 도시와 나라까지 달라져도 윤우는 휘성을 캐리어처럼 챙기겠죠 친구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런 부분까지 기억하냐고 해도 환경이 수차례 바뀌든 놓기 싫은 게 있으니까. 사람이 제때 이성적이면 초과가 왜 있겠어 우리가 있기 전 훨씬 전부터 이미 누군가 과분할 만큼 담느라 그런 어원이 생긴 거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할 뿐이라고. 메일 속 형식적인 온점을 찍기 전 꼭 되묻는 문장도 빼지 않기 너에게 회신 될 여지를 열기. 귀찮은 대화를 나눠 만난 날엔 어색하지 않을까 멋쩍게 앞머리나 만지던 긴장은 공항이 등굣길인 듯 전보다 크고 전처럼 웃는 이휘성을 보면 금방 풀릴 테지만. 와...... 키 컸다는 게 진짜라니. 내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해? 주전이라고 했지? 응. 다른 애들 소식 뭐 들었어? 아니. 네가 말한 것만 알아. 가는 길에 알려줄게. 춥다. 윤우 너 장갑은? ...... 어딨더라?

 

225. 이휘성은 버스 타면 접이식 뭐처럼 죽어가는데 가끔 이 사실 간과하고 도레벌떡 버스 탑승했다가 그 녀석의 침묵에 나직이 미안하다고 하는 도윤우. 더 일찍 내릴지 머리 굴리느라 휘청이면 어깨 잡아주더니 넌 피겨 하는 애가 이럴 땐 중심 못 잡냐는 타박을 듣겠지만 단단히 쥔 손 때문에 이휘성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해요 기사님 오늘 좀 천천히 가주세요. 그러나 금방 생긴 자리로 나란히 앉아 빠르게 바뀌는 풍경을 구경하고 기대 하품하며 또 멍한 시간으로 돌아갈 바보들.

 

226. 이휘성도 이런 추위엔 이불 바깥으로 나가기 싫어지고 결심한 척 웅크려 새벽 훈련을 잠시 원망하기도 하는데 비슷한 시각 온몸 무장한 채 링크장 폭파 기원 1일 차 진행 중인 도윤우 문자 받으면 분명 웃겠죠 벌써 한파 온 줄 알겠네…….

 

227. 생각 없어 보이지만 상대를 생각하기에 하는 행동이 좋다 서로 얼마큼 의식하는지 몰라도 내가 너보다 너를 더 생각한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없던 일을 부풀려 상상하다 한숨만 푹. 왜 그런 걸 누리려면 한 가지 형태밖에 답이 없을까 난 단지 네가 좋은 것뿐인데.

 

228. 요즘 포토이즘 내부 넓어서 이휘성 같은 체구도 부담 없이 낑겨 찍겠지만 여행 가거나 기억하고 싶을 땐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인쇄하는 것도 좋아요 대충 아래에 날짜 쓰고 서로 같은 날 다른 모습의 사진을 나누며 어디 뒀는지 안 까먹는 물품 중 하나. 드문 일화에도 팬들과 찍는 게 습관인 도윤우에게 자연히 비즈니스 어쩌고 포즈가 나오면 그런 반사신경의 출처는 어디냐고 순간 사색할 이휘성 어이없고 웃긴다. 내 친구지만 본업 모드를 보면 어색한 게 당연하니까……. 싫다는 소리는 아니고. 근데 꽃받침은 빼자.

 

229. 추위 덜 타는 사람처럼 이미 핫팩 쥔 손에 하나 더 올려주는 이휘성 그 습관적인 호의가 신경 쓰이던 영하. 너나 잘해, 다시 그 애 손을 움켜쥐어 가만히 열기를 전할 동안 관찰당하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는 도윤우. 남자애가 속눈썹도 길고, ...... 이제 보니 앞머리도 꽤 기른 것 같은데. 그런 생각에 무심코 머리를 넘겨주면 서로 영문 모른 채 시선이 끔뻑 맞물리다 일순의 적막은 기껏 데워줬더니 손 왜 빼냐는 버럭으로 일단락.

 

星 아 보기 불편했다고. (;)

雨 내 머리지 네 머리야?

 

230. 사소한 열도 귀해지는 계절이 좋다 허락 없이 후드티 속으로 비집고 들어간 손 뿌연 숨 서늘한 공기에 내포된 온기 11월 말로부터 되찾은 여름의 침공. 우리는 항시 아카시아 속에 살았구나.

 

231. 카페 의자가 너무 낮아서 음료 마시려다 말고 도윤우를 흡사 여우와 두루미 속 두루미 얼굴로 응시하는 이휘성 장소 선정은 둘의 의지가 없었는데도 왜 도윤우가 미안하다고 해야 할 것 같은지

 

232. 이런 날씨는 한동안 주야장천 볼 테고 눈 쌓일수록 핫팩도 쌓여만 가는데 굳이 다른 애들 따라 나간 이휘성의 뒤꽁무니를 쫓아 엉겁결에 눈사람 만들기 캠페인 동참 중인 도윤우. 춥고 차갑고 정신 사납고…… 아 몰라 일단 만들자.

 

233. 둘 다 눈에 아이처럼 감흥 있기보다 주변 분위기에 떠밀려 한번 시작하면 진심으로 임한다는 점이 비슷할 것 같죠 특히 눈싸움……. 사람 눈 보며 이기는 건 자신 있는데 눈덩이로 이길 방법 모색하다 급기야 물 붓자까지 이른 덤앤더머 팀. 한바탕 원중 녀석들과 눈싸움 직후 패딩 모자부터 소매 안쪽까지 눈이 안 들어간 데가 없어서 머리를 대신 털어주던 이휘성에게 장난기가 발동하기도 하고요.

 

雨 …… 어. 갑자기 머리 아프다.

星 아프다고? 봐봐.

 

장갑 벗은 손으로 짚어지자 냉큼 뭉친 눈을 목에 누르는 도윤우. 이걸 속냐. 진 팀이 매점 핫바 사기로 한 약속 지켜라 뒤돌던 전영중이 본 광경은 이휘성에게 패딩 모자를 붙들린 채 외마디만 내뱉던 도윤우 뿐 괜히 간 떨어지게 하지 말 것.

 

234. 벤치 끝에 앉아 덜 무거운 쪽이 흘금 눈치를 살피고 그닥 새롭지 않은 화제를 꺼내 도리어 직선적인 듯 우회적으로 놀이터 갈까 자전거 대여할까 인기척 내는 미성년들의 괜찮지 않던 어느 날. 내가 너보다 월등히 앞선 놈도 아니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위안에 안주하지 말고 위로 올라가야 하더라도 등을 툭 치거나 머리에 얹은 손이 좌우를 파헤치는 등 어수룩한 오지랖 부려도 허락될 관계 아닌가 남도 아닌 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