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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윤우의 뻔뻔함이라면, 가끔… 슛 넣지 못할 때 이휘성이 직접 허리 안아 올려 넣으라고 해주거든요. 그게 달가워 겸사겸사 형편없는 농구 실력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쪽이 너와 있기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리고 이걸 재석 쪼에게 들키고 마는데…

 

형 수작 폼 미쳤다.

제에발…

 

2. 답도 없는 불분명한 삶의 주체조차 되지 못한 도윤우는 호승심 불피운 아이처럼 피겨 종목에 양가감정을 갖고 산다. 난 말이야 스케이트장의 내가 사랑받는 게 좋았는데, 넘어진 살얼음판의 공기가 나를 지옥까지 죄 처박는 듯하여 미친 듯이 외로워. 굶주린 식욕 채우지 않고 온수로 맞춘 탕이 식어 빠질 때까지 잠긴다면 하릴없이 안녕할 수 있겠건만 나는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살고 싶어 했으므로 축축한 앞머리를 말려 늘어질 사치스런 여유까지 덜어가며 살 뿐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무슨 수를 써야 너만큼 나의 일을 사랑할 수 있을까. 농구가 재미있니. 이름값인 양 여실히 산 너와 다르게 난 내 사랑에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희망적일 줄 몰라 네가 아주… 아주. 부럽다는 생각을 해. 휘성아.

 

3. 도윤우를 이룬 것들은 참… 도윤우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빠진 탄산수와 눅눅한 과자를 좋아해요. 하여 휘성은 남은 탄산수의 뚜껑을 세게 여닫지 않고 입구 훤한 과자 봉지도 닫지 않죠. 우유를 곁들이지 않아도 물렁한 오레오를 그때 처음 먹어봤다고. 더불어 시즌 앞둔 도윤우의 불안 해소법은 얼음을 까득 씹어 먹는 행동인데, 치아가 깨질까 강아지 입안 살피듯 거진 반강제로 입 벌려 차라리 빨아내라고 잔소리할 때도 있고요. 잠자코 말 듣나 했건만 도윤우는 조용히 깨무는 스킬을 터득… (진짜 드럽게 말 안 들음)

 

輝 네가 다칠까 봐 하는 걱정이잖아.

潤 입안은 아무도 안 봐.

輝 골 때리게 하지 말고…

 

4. 휘성은 창가 자리의 도윤우가 눈 부실까 제 덩치로 햇볕을 가려주곤 해요. 쳐다보지 않으려 하지만, 또 의식적으로 시선 머물던 자리였기에… 긴 앞머리가 속눈썹과 닿지 않게 살짝 걷어내고서 묵묵히 있어주는 편. 아울러 반대의 상황에선 이휘성은 앉은 자세로 졸기보다 엎드려 꾸깃 잘 때가 많아 톡 튀어나온 긴 손가락과 가볍게 얽어 쥐어보곤 금방 자리 떠날 도윤우입니다. 두 사람 다 상대의 이런 행동을 알고 있어도 붙들어 묻지 않아요. 이 무방비한 모습으로부터 너의 욕심이 분출된다면 나는 계속 모른 척하려고. 내 욕심을 죽이려고.

 

5. 가끔 어려진 이휘성과 도윤우가 보고 싶어요. 초등학생 시절 역시 도윤우에 비해 충분히 큰 이휘성이지만, 고등학교 때보다 시선 맞추는 게 덜 힘들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편해 서로 손목 꽉 쥐고서 돌아다닐 것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

 

輝 앞머리 너무 길지 않아?

潤 그러게. 어릴 땐 잘 못 느꼈는데...

 

시야 확보를 위해 도윤우의 앞머리를 사과처럼 올려 묶어주고 일단 어떻게든 돌아갈 방법 찾느라 급급해진 이휘성에게 초등학생 요금 내서 버스 타고 여행 가자 찡찡 조르겠죠. 이런 경험 어릴 때부터 체육인인 우리가 정처 없이 돌아본 적도 없으니 놀 기회잖아요. 해봐야 정점까지도 못 가고 내려 분식집과 타 학교 농구부 구경을 하다 무사히 돌아오자마자 지국민에게 보쌈당해 급한 대로 원중 기숙사로 돌아가지만요. 다만 도윤우는 정말 즐거웠어요. 하는 것마다 전부 일탈이었기에 친구랑 평범한 음식을 먹는 것도 새로웠고 이휘성은 그런 도윤우의 즐거운 어린 시절 추억에 낀 기분이라 만족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우리 어떻게 돌아가지?

 

6. @ 전 애인 이름 말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

당연히 연애에 전무하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 수상할 정도로 열리지 않자 결국 외치고 열린 문 앞에서 지금껏 우린 친구잖아 염병천병한 점에 대해 현타 온 둘. 도윤우는 제대로 사귄 건 아니었고, ‘좋아한다’는 난제를 해결하고자 교제한 거였어요. 날 좋아해 주는 사람 거절하기도 싫었고. 휘성의 아이러니한 부분 하나입니다. 사람이면 상관 없이 다 좋은 건가. 그건 좀 싫은데.

 

輝 안 알려줬잖아. 언제 해봤어?

潤 중학교 때 잠깐이야. 같은 피겨반에서.

潤 사람으로 느낀다니까 차였어.

輝 말로만 차였어?

潤 묘하게 아쉬운 눈치다?

 

7. 관계가 교제한 방향으로 흘러도 연인의 애칭은 부끄러워요. 별 감정 없던 친구로 지낸 세월도 짧지 않고… 사랑해 하나조차 무거워서 도윤우는 가끔 이휘성의 별 성을 따라 ‘별아’ 애칭을 가아끔 사용합니다. 정말 가끔이요. 이휘성만 모를 잠들 때라든가. 이런 도윤우보다 애칭 아닌 애칭을 습관처럼 사용한 이휘성은 ‘우야’ 소리를… 하는데요. 가끔 다른 사람과 함께인 자리에서 부르면 도윤우만 낯뜨거워져서 감탄사라고 해명하다 씨알도 안 먹혀요. 돌고 돌아 굳은 애칭은 서로 이름 끝 글자인 성아, 우야.

 

8. 도윤우는 스스로 내면이 약한 사람인 걸 알지만, 간단하지 않은 사랑 때문에 피겨를 택했고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한다는 것만으로 이휘성은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때 동정했어요. 돌아볼 줄 모르는 도윤우를. 동정까진 거창하다. 이휘성도 스포츠의 성장통을 앓고 의구심 역시 가져봤으나 도윤우처럼 자학 수준은 아니었기에 더 이해가 어려웠겠죠. 애는 앞을 볼 줄 모르나. 앞이 안 보여서 뒤만 보는 건가. 왜 힘든 얼굴로 회전하고 회전할까. 그게 마냥 열 때마다 돌아가는 오르골 같다. 그런데 나도 네가 동경할 만큼의 대단한 위인은 아닌데. 해야 할 걸 할 뿐인 열아홉에 불과한 나를 대단한 뭐라도 되는 양 별 박힌 눈의 출처가 나라니.

 

9. 도윤우는 강아지를 키워요. 이름은 진달래. 그래서 늘 프로필도 강아지고요. 이휘성과 숨 막히는 원온원으로 당당한 승리를 쟁취한 적도 있습니다. 밥을 제때 주고 햇볕만 보여줘도 절대적인 애정을 받을 수 있어 키우기로 마음먹은 거였는데, 지금은 정말… 사랑하는 가족이에요. 이휘성도 훈련 끝나고 빈 시간은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공원까지 가 달래를 보곤 합니다. 말랑말랑 발바닥과 서늘한 공기, 샴푸 향. 휴식. 말랑말랑 도윤우…

 

潤 보면 애는 나보다 널 더 좋아해…

輝 강아지는 주인 닮는다던데.

輝 아니야?

 

10. 불꽃놀이를 얘기하기엔 늦은 감 없지 않아 있는 시기지만 한 차례 느린 걸 좋아해요. 이휘성도 도윤우도 인파 속 꾸역꾸역 다니는 것보다 높은 데에 올라가 보는 방향을 더 선호합니다. 타오르는 꽃 두고 상대를 응시하는 건 사랑 외 달리 붙일 이름이 또 있을까요. 둘 다 불꽃놀이를 봐야 하는데, 서로에게 시선 두느라 그만 딱 마주친 순간엔 황당해진 도윤우. 나는 왜 너를 보고 싶었고 너는 왜 나와 눈이 마주쳤을까. 시끄러운 폭죽을 용기 삼아 띄엄띄엄, 네가 더 빛나.

 

輝 … 뭐? 안 들려.

潤 입 벌리고 보는 거 못생겼다고.

輝 좋은 날 틱틱대지.

 

도윤우의 어깨 위로 팔 두른 채 티격태격 웃던 이휘성은 조금 더 많은 인파와 함께일 걸 잠깐 후회했어요. 터지는 것들은 죄 불꽃이니 도윤우는 이 작은 소음에 한 치 의심도 해선 안 되니까. 읽어낸 입 모양은 함구할 것. 내 손바닥이 열기로 홧홧해짐과 더불어 실은 난 네가 저걸 보고도 나를 응망할 것인지 궁금했던 것 또한 비밀로 둘 것. 굳이 감정에 이름 붙이지 말아야지. 오늘 수확은 그저 예쁘고, 즐겁고, 사랑스러운...

 

11. 도윤우는 씨그램 같은 탄산수의 김빠진 목 넘김을 좋아하는데… 카페 가면 가장 자주 마시는 음료가 골드메달 사과주스예요. (…) 우유 크림 들어간 케이크나 타르트도 좋아하고… 이상하게 주변서 잘 먹이고 싶은 부동 1위라고 해야 하나. 주변이 농구부라 그렇겠죠. 다만 종목이 피겨 선수인 만큼 디저트는 거의 먹지 못합니다. 스케이터치고 키까지 커서(179) 혹여 불리하게 작용할지 소식하는 편. 비시즌에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은 폭신하고 담백한 맛 + 웬만하면 뜨거움을 충족하는 유부 많이 들어간 우동.

 

12. 이휘성 콕 찌르고 숨는 장난. 모를 수 없는 게 그 높이까지가 최선인 사람도 도윤우밖에 없고(…) 칠만한 인물도 도윤우뿐이라 알면서 한두 번은 뭐야 받아주고 세 번째부턴 그만하라고 손 답싹 잡는 이휘성이 귀여워요. 그 필사적으로 샤샥 숨는 장난기가 웃긴다고 해야 하나. 못 이기는 척 받아주는 재미도 있어 처음엔 심드렁했는데 이젠 가끔 도윤우가 피하는 방향을 외워 마주 보거나 속아주거나… 재밌는 원중 일상이에요.

 

13. @ 어두운 저녁 가로등 아래서 키스하다가 상대방 가족한테 들키는 드림컾 주세요

도윤우 누나는 동생을 아들처럼… 19년 동안 어화둥둥 키웠건만 골치 아픈 감정 처리를 못 해서 앓고 있는 게 마지막 통화였는데 이눔 똥강아지 쉬키 전봇대랑 키스할 만큼 정신 나갔을 줄 몰랐다. 멀리서… 이휘성은 길쭉한 그림자로밖에 안 보이지 않을까요? 동생의 취향(?)이니 존중은 하겠다며 부랴부랴 들어갈 거예요. 이후 제대로 얘기 나눈 후 다음번 만났을 땐 윤우 누나라며 소개하시는 분께 허리 폴더처럼 어색하게 구부린 이휘성이 정말 귀여울 것 같네요…

 

14. 도윤우는 바다가 겁난 적은 없어도 수면보다 아래를 당연하게 생각해서 탁 트일 풍경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어요. 겨울 바다가 예뻐도 추운 건 싫었고 좋아질 것보다 당장 싫을 것들이 우선이라 함께면 다 괜찮을 사람과 구경하고 싶었을 테죠. 끝의 기준은 뭘까 내 발치에 닿은 거품 같은 액체가 바다의 끝인가 저만치 파랑보다 까만색에 가까운 일직선 너머가 끝일까 밀려온 바닷물이 차가우면 눈살 찌푸려 주춤이다가도 괜찮다고 손 얽어 잡아주는 사람이 있기에 도윤우는 그 해 처음 시린 추위 지나 선선한 바다를 부유해 봅니다. 겨울은 계속 겨울이겠지 어제 본 돌담에 낀 거미가 죽고 도로 위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내가 쉬다 간 자리서 여러 차례 이끼가 부패해도 겨울은 영영 겨울이겠지 겨울이라는 이름을 달고 바다는 얼고 새는 울고 겨울 다음은 겨울일 테지만 괜찮다 발목까지 차오른 서늘함에 푸하 웃어버린 너는 물고기처럼 벙긋댄 구가 숨으로부터 온기로부터 겨울이란 게 겨우 봄을 위한 장치라고 알려주니까.

 

15. 이건 정말 실없는 이야기인데 이휘성은 탕후루 먹어봤을까요 안 먹을 상이지만… 도윤우도 입에 대기 싫어할 듯하고. 결국 궁금증 못 참고 합의 봐서 하나 나눠 먹기로 했는데 둘 다 동시에 든 생각 이거진짜장난아니게달다. 토마토나 귤 쪽을 좋아할 거란 소소한 상상을 해봤어요 체육인의 일탈이라고 해야 할지. 설탕이며 꼬치며 다칠 위험 적게 도윤우에겐 첫 번째 부분 먹이고 본인은 다음 차례로 먹을 이휘성도 귀엽고요. 텁텁한 입안 진정 겸 어차피 일탈 중이니 사이좋게 캔디바로 마무리.

 

16. 이휘성의 동물화가 주로 늑대인 것처럼 도윤우도 변하면 어떨지 종종 상상하곤 해요. 근데 이제 거북이인… 흥미로운 서두죠. 원래부터 욕조서 잠기는 걸 좋아한 도윤우는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다며 둥실둥실 떠다니는데, 그건 그냥 물살 못 이겨 거침없이 내려갈 뿐이라고 황급히 머리 위에 올려두는 늑대 이휘성이 귀여워서… 비슷한 동물로는 사막여우와 까마귀도 있어요. 한입 크기 사막여우 도윤우를 앙 깨물고 휘벅휘벅 걸어가는 늑대 정신.

 

17. 처음 스케이트 타보는 이휘성은 침착하게 중심 잡기 어려워할 것 같아서 귀여워요. 그의 옆을 유유히 지나가며 이 스케이트장은 부실하니 이미터가 넘어지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장난치는 도윤우를 팍 식은 눈으로 쳐다보는 중. 반면 이휘성도 야외서 농구할 때 종목부터 불리한 거 알지만 삼 미터 만들기 필살기로 비겁한 새끼 소리 사며 장난치는 사람이라 도긴개긴 같네요. 슛 가르쳐줄 땐 도윤우는 일부러 한 차례 늦게 깨닫는 척합니다. 그편이 조금 더 대화하기 좋은 흐름이고… 계략 D. 다만 이미터 넘는 센터 두고서 슛 넣을 만큼 도윤우가 영점 조준할 줄 알았더라면 농구부에 들어갔겠죠. 처음은 의도적이었으나 뒤로 갈수록 진짜 못 감당했다는 안쓰러운 후일담이 있어요. 輝 oO(부실한 도윤우…)

 

輝 도윤우.

潤 왜.

輝 뺏어봐 꿇어도 좋고.

潤 너 애들이랑 인터넷 공유하냐?

 

18. 명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휘성은 분주하게 갈아입고 나갈 상황이 많다 보니 해진 줄 모르고 탈의 과정에서 명찰 떨어진 적도 있을 것 같아요. 금색으로 이휘성 석 자 처량히 굴러다니던 걸 도윤우가 줍겠죠. 돌려주려고 부른 입이 다른 화제 꺼낸 탓에 혼자 교실서 몇 번씩 이휘성의 명찰을 만져보곤 엎드려 이걸 왜 안 돌려줬지 내가 멍청했네 앓던 고개는 손끝에 뭔가 닿고 나서야 올려다볼 거예요.

 

輝 명찰 도둑.

潤 … 네가 떨궜어.

輝 내가? … 언제?

潤 그걸 나한테 물어. 가져가.

輝 고마워. 사물함에 넣어두지.

 

탈의할 때 명찰이 불편하다는 둥 시답잖은 대화 나누다 옆에 앉아 잇는 말이, 좀 달아달라고. 순전히 명찰 하나 해주는 것뿐인데 과장 보태 10초 안 되는 시간 동안 이어진 침묵 속  이휘성은 가까운 도윤우의 긴 속눈썹을 내려다보고 시선 마주칠 땐 고맙다고 하겠죠. 하루 면적을 차지할 만한 시간도 아닌 게 왜 오래 기억되는가 하면 그 후부터 명찰 달린 가슴께를 자꾸 의식해서. 찌뿌둥한 의식적인 간질거림을 기지개로 애써 푸는 남학생 두 명.

 

19. 오늘 혼자 반창고에 끄적이며 생각한 건데 면적 넓은 반창고는 네임펜으로 낙서하기 좋아서 도윤우 픽 거북이 그려주는 이휘성이 떠올라요. 여러 디자인이 나오니까… 뭐 이휘성표 반창고 세트 그런 거. 결과적으로 거슬려서 못 쓰고 새것 뜯겠지만 실없게 웃는 일 하나 추가.

 

20. 도윤우의 피겨 외 분야에서도 살기 위한 생존 본능을 좋아해요 자신이 죽을 때는 덜 건조하고 추운 곳으로 시린 발목과 골반과 허리에게 그 정도 선처는 베풀기 잘 보이고 싶던 건 부모의 애정보다 자기 연민이었을 거란 생각도 합니다. 스케이팅도 즐거웠으나 딛는 세계가 넓어질수록 즐거움은 본업이 될수록 첫 본질을 잃어 뒤돌기엔 어떤 변화도 일으킬 수 없어요. 더 가파르게 더 위태롭게 노력하면 언젠가 랜딩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이 짓을 사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빛나볼 수 있을까. 이휘성을 봤을 때도 한참 부러운 한자를 곱씹었듯 지겹게 낭만 좇는 꼬마 같네요. 유아 때부터 비롯된 노력을 배신하기 싫다 앙상한 가지도 잎이 나고 자라는데 내 몸은 죄 곰팡이에 잠식되어야만 하나. 실은 휘성아 난 어릴 때 별님을 꿈꿨어 쌓인 피겨화를 올라타 하늘과 가까워지길 바랐거든. 나는 여전히 어린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되 어린 나를 비하하지 않으려고 내가 겨우 닿은 별이 이렇게 단순하고 열성적인 바보라서. 그래서 더 그러기 싫어졌어.

 

21. 어디서 본 이야긴데 좋아해 초반은 이불 뒤척이는 소리가 시끄러울지 마음 졸이고 경직된 채 자게 된대요 시간과 순간과 추억으로부터 누그러져야 외려 이휘성은 잠 안 올 때마다 등 돌려 잔 도윤우를 주물럭대는 게 일상이지 않을까 해요. 도윤우는 태아처럼 다리까지 웅크려 자는 게 습관이에요 정면으로 자면 대개 악몽을 꿔서. 피곤한 날 까무룩 잠들자 자각한 악몽에 눌리는데, 깨워줄 사람의 새로운 온기를 배웠겠죠. 같이 살면 좋겠다. 마주 보고 잠들지 않는 이유는 이휘성의 힘 조절 실패 후 거대한 동물로부터 꽥 찌부된 도윤우의 악몽 때문.

 

潤 사람… 사람 있는데.

輝 oO(… 꿈꾸나? 얼굴 쭈글쭈글해졌다.)

 

22. 나는 서 있는 곳의 빙판이 녹는 상상을 한다 그러니까 바깥부터 더워 죽어버릴 것 같단 싱거운 대화 오가면 환복하고서 걷는 곳마다 무언갈 베어낸 소리에 따끔거린 팔과 허리를 걷어내도 멀쩡한 살갗이니 스케이팅은 참 괴이한 종목이다. 더우면 타죽나 추우면 서리가 끼나 서리가 타고 잿가루가 희뿌옇게 불면 계절을 상실하나 상실된 계절을 살아가고 있나 호흡하고 내쉬고 잠시 잊고 여기가 더운 듯 한겨울 여름나기처럼 땀을 닦고 바라건대 이를 읽는 이에게 너는 내가 살지 못한 여름을 대신 살아 얼음을 깨물고 손부채질 해대며 추위를 찾지 않는 한 추울 수 없게 살아야 해. 이러니 내가 너 말고 또 각별한 사람이 있는 것 같아 그렇지.

 

23. 도윤우는 사랑과 우정을 구분 지을 줄 모르는 사람 같죠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고 사랑도 우정이라고 여기는 사람. 똑같잖아요 친구끼리도 각별하고 애틋한 데다 어쩌면 사랑보다 유통기한이 긴 관계인데 굳이 사랑한다고 해서 친구까지 잃어야 하는지. 그래서 이대로면 괜찮다고 이휘성의 친구인 난 이상한 게 아니니까 허접한 합리화인 걸 알지만 졸업 후 각자가 되는 스물이 더 두려운데 무슨 소리를 하면 오래 행복할 수 있나요. 난 네 잠결의 얼굴을 봐도 될 명분이 필요해. 이런 말? 이휘성이 농구를 사랑해서 다행이라는 생각 참 많이 했습니다 내 숨 쉬는 횟수를 일일이 세지 않듯이. 이휘성의 사랑은 오직 농구여야만 한다고 내가 타인이 누구든 욕심낼 수 없게 너는 빈틈 없이 사랑으로 꽉 찬 사람이어야 한다고.

 

24. 횡단보도에서 멍하게 있으면 건너는 옆사람 따라 움찔거리는 법칙 아세요? 이휘성은 도윤우보다 키 한참 큰데도 대화할 때 도윤우 쪽을 응시하니까 고개 숙여야 하는 걸 깜빡하고 몇 번 문에 이마 박았을 것 같아서 바보 같고 귀여워요… 다만 도윤우는 올려다보는 위치라 이휘성보다 시야 확보가 쉬우니 애 숙여야겠다 싶은 시점에선 대화 나누다 말고 앞에 조심해, 라든가 고개 숙이는 시늉으로 신호 주는 편이에요 이마 발개진 채 수업 듣는 게 귀엽긴 해도 멍들까 봐.

 

25. 한겨울 롱패딩 입고 뒤뚱뒤뚱 다니는 도윤우 뺨 감싸선 왜 내 친구가 펭귄이 됐지 어디로 납치한 거야 장난치는 이휘성. 도윤우는 추위를 많이 타요 주머니는 늘 핫팩으로 따듯하고 피겨반 가면 친구의 담요가 머리에 씌워져 있는 걸 자주 볼 수 있고요. 이휘성 패딩으로 들어가면 두 배 더 따듯해서인지 캥거루인 양 들어가 대화할 것 같죠 진중해 보이는데 정작 그날 급식표에 초코파이 있길래 오뜨가 더 맛있다는 주제.

 

26. 이휘성 그만 크라고 머리 열심히 눌렀는데 잭과 콩나무인 양 무럭무럭 자라 구름 뚫는 악몽 꾼 도윤우… 거기서 떨어져야 키가 크지 그냥 이휘성이 열심히 자라기만 했다는 내용. 콩나무 이휘성 귀엽겠다 근데 고소공포증 있으면 더 귀엽겠다.

 

27. 도윤우 집 놀러 가 엉겁결에 달래와 산책하고 놀아주게 된 이휘성은 훈련할 때보다 기절하듯 뻗을 것 같아요 과일 주려니까 거실 바닥 위로 이미터 포댓자루가 있더라고요. 마주 누워 큭큭 웃던 도윤우도 함께 잠들겠죠. 장마라든가 남이 느끼기에도 유독 추운 시기면 어린 도윤우는 늘 달래를 안고 잠들었어요 찾지 않아도 꾸역꾸역 와준 달래 덕에. 추억과 온기 말미암아 그날처럼 달래를 끌어안고 잠들었더니 이휘성이 눈 뜨자마자 마주 본 건 안면 핥는 달래… 의 키스. 바깥은 이미 노을 지고 깨우기엔 편안해 보이는 도윤우에게 본인 겉옷 덮어주고선 오래 쳐다볼 거예요. 침자국 못생겼다고 놀릴지 반응을 상상하며 달래야 우리 조금 더 기다리자. 오빠 깨면 잘 잤냐고 물어야지. 네 꿈에도 노을이 졌냐고. 속삭이는 이휘성의 머리는 조금의 주황과 파랑의 경계가.

 

28. 실없는 게 보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오백 원의 도박쇼 즉 뽑기 기계 앞에 커다란 덩치 쭈그려 앉아 도윤우 닮은 상자 속 검은 고양이 열쇠고리 얻어내는 이휘성처럼요. 지국민에겐 그 돈으로 차라리 당근 마켓에서 사겠다고 대꾸한 건 까맣게 잊고… 그래도 금방 나와 오천 원밖에 안 썼어요. 웃기게도 닮은 건 본인이 갖고 도윤우한테는 나머지를 줬습니다. 이 괴상하게 생긴 고양이는 어디에 쓰란 건지 거북이 주지(?) 살피다가 또 자꾸 보니 귀여운 것 같길래 집에 하나씩 나열해 뒀을 것 같아요. 유독 푸짐하게 생긴 애 이름은 휘성으로 지어야지.

 

29. 핼러윈 겸 뱀파이어 이휘성 x 인간 도윤우의 좌충우돌 원중 이야기 풀고 싶었는데 하필 결심한 직후 채혈에서 혈액 세 통 뽑힌 나머지 실제로 실신해 버린 탓에 맨정신으로 뱀파이어물을 볼 수 없게 되었어요. 이휘성은 한 번 물게 되면 깨물수록 채워지는 허기와 단내를 뿌리치기 어렵겠지만 도윤우가 쓰러질 것 같다는 이성 들자 본인 입에 있던 혈액을 고스란히 입맞춤으로 도윤우에게 넘겨줄 것 같아요 당연히 비릴 텐데도 꿀꺽 받아먹는 이유는 이휘성의 입술과 접촉했으니까. 도윤우가 기억하는 건 거기까지. 일어난 후 본 건 초코파이 여섯 박스와 입마개를 조신하게 내려두고서 무릎 꿇고 있는… 친구. 이 세계관의 취미는 이휘성의 뾰족한 송곳니를 틈틈이 갈아주는 일. 스스로 할 수 있어도 도윤우의 낯이 가까워지니 마다치 않고 얌전히 받는 이휘성.

 

輝 그에 유우야 아흐다.

潤 … 뭐라고? 미안, 제대로 말해봐.

輝 아프다고.

潤 세게 안 하고 끝만 갈았는데…

輝 … 넌 이제 치과 가서 마취 받지 마라.

潤 무슨 뱀파이어가 이래.

 

30. 연습 결과가 좋지 않아도 출석이 불가피한 날엔 도윤우는 양호실을 자주 이용합니다 몸이 뜨거워도 오한이 돈다는 건 최악이에요 나는 추워 죽겠는데 열만 재면 38도쯤 이르고 양호실 침대 위로 뉜 몸 뒤척이며 억지로 감긴 눈에 잠이 몰리길 기도하겠죠. 선잠이라도 자길 바라는 마음과 깨우기 곤란할 정도로 깊이 잠들진 않길 원하는 생각 공존한 채 양호실에 방문한 이휘성. 교실보다 체육관과 오래 있는 사람이라 5, 6교시 중간에 올라갔을 것 같아요. 오전에는 가까이 있기만 해도 덥더니 지금은 열이 좀 떨어졌나 확인 차원으로 상체 숙인 이휘성은 손 아닌 이마를 맞대곤 한참씩 가만히. 그리고 엇비슷한 시각 걱정돼 올라간 4번과 5번 친구는 자는 사람에게 뭐하냐는 괴성을 볼륨 최하로 낮춰 외치는 소소한 오해가.

 

輝 예상은 가는데 아니니까 의심하지 말아줘.

 

31. @ 드림주의 모에화 동물은 무엇인가요? 왜 그 동물을 선택했나요?

누군가처럼 늑대정신은 아니지만 조류정신을 굳건히 다집니다 까마귀는 반짝이는 걸 좋아해요 별 성의 인연을 오래 두고자 안간힘 쓰는 도윤우와 다방면으로 예민한 점까지 닮았어요. 이전에 꺼낸 거북이 모에화는… 평소 거북이를 좋아해서 열쇠고리나 사진을 종종 구경하곤 해요. 느린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다는 이야기는 어린 도윤우가 별님 다음으로 동경하던 주제이기도 했고요. 다시 태어나면 거북이가 되고 싶은 도윤우에게 희망찬 모에화 어쩌고를…

 

32. 도윤우가 거북이를 좋아한다고 언급한 적 있는데 친누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런… 걸 받았어요 사진 찍어 보내달라는 말 무시하고 참담하게 등받이용 쿠션으로 사용 중. 생각 많을 때면 안에 밍기적 들어가곤 해요 이휘성은 어처구니 없게 쳐다보면서도 깔아뭉개듯 등껍질 위로 누워 도윤우의 항복을 기어이 받아낼 것 같죠. 거북이화가 가능한 짙은 우울이 아닌 데엔 무겁게 다가서지 않기.

 

輝 … 너 거기서 또 뭐해?

潤 옮겨줘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게.

輝 오늘 훈련은 유독 허리가 아프네…

潤 또 눕, 무거워…!

 

33. 비록 지금은 가을이지만 더운 게 좋고 추운 게 싫은 도윤우라도 캔디바가 간절한 시기 운동장 계단에 앉아 거의 녹은 생수병을 뺨에 문지르며 안 되겠다 오늘 연습 안 간다 등의 말 안 되는 말 하면 잠자코 듣던 이휘성도 오늘 센터 파업할까 대꾸해 주는 게 좋아요. 여름은 불가항력의 계절이에요 맥없게 웃고선 주전이 빠지면 어떡하냐 도윤우가 셔츠 펄럭이자 아이스크림 사 줄 테니까 얌전히 연습 가자고 팔 당겨 일으키는 이휘성. 이거 좀… 돈가스 먹으러 가자는 치과행 같지만 아무튼 무사히 하루치 오운완.

 

34. 가비지 사운드 이휘성은 묵묵히 받쳐주는 베이스 담당이라고 밀고 있습니다 시끄럽지 않되 묵직한 울림 있는 베이스 소리를 도윤우가 호기심 품고 좋아할 거예요 비록 자신은 시답잖고 고상한 피아노 연주 생활 끊고 초라한 공연장에 서 있는데도 흥미 잃은 사람들이 다 떠날 때까지 연주자의 손을 표정을 스포트라이트 받던 자신보다 빛나는 한 개 조명 아래 이휘성을 응망하죠. 두 번은 건반과 마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러한 계기 탓에 밴드에 들어간 도윤우는 키보드 담당이라고 생각해요. 너와 같은 무대에서 즐거움을 다시 찾고 싶어. 이 세계관은 농구가 없다 보니 도윤우도 자연히 피겨 대신 피아노입니다 더한 압박 속에서 완성된 조용한 성격이 현재보다 도드라지겠죠. 그런데 이휘성은 공연마다 빠짐없이 참석해 주는 도윤우가 한눈에 봐도 밴드를 좋아한다고 알아챌 수 있었어요. 아마 웃고 있었나 봐요. 좋아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니까 그 간단명료한 대답은 예컨대 이휘성이 나를 속이지 않는 솔직한 삶을 살아와서 아닐까요. 한여름에도 두터운 패딩 입듯 과한 무게를 안고 산 도윤우에게 단순한 웃음을 주는 인물이라 도윤우의 조명이 발현한다면 이휘성도 흐릿하게 보이던 미소가 가까워진 점을 드디어 의식하게 되겠죠 보컬도 눈에 띄는 포지션도 아닌 나 하나 보고선 새로운 너를 개척한 네가 사랑스러운 것 같아.

 

루시 - 10sec

 

35. 오직 도윤우만 이휘성을 기억하고 누구도 그를 알지 못하며 어디에도 이휘성이 없되 어딜 봐도 이휘성만 보이는 덜 만들어진 세계의 오류. 가상인 걸 안 순간 역한 냄새를 참지 못한 도윤우는 양손으로 짓이기듯 물 묻히지 않은 세안을 하고 하늘이 더 질 수 없는 한계까지 이휘성이 있는 곳을 찾겠죠 낭떠러지뿐인 남쪽 끝 고래 같은 울음소리가 불거지며 웅크린 채 큰 환각의 오리온 띠를 응망하더니 또박또박 뱉는 철자.

輝星이다.

______ 도주성이라는 게 왜 좋은지 어느 세계의 휘성은 기준치에 내쳐진 별이었고 오류로 인한 구성 요소들이 전부 제자리로 돌아가 남겨진 도윤우만 지상 위 고래처럼 헐떡이다 정체를 알게 되는 최후가 보고 싶어요. 제목 휘성은 외계인(아니에요)

 

36. 건조한 시기 도윤우가 틈만 나면 바르는 핸드크림과 립밤이 있습니다 특히 구 안쪽 깨무는 습관 탓에 립밤은 더 자주 바르는 편이에요. 같이 쓰는 립밤을 발라주진 못하지만 이휘성의 양손 내밀게 하곤 핸드크림 덕지덕지 발라주는 경우가 적지 않죠. 굵은 선 따라 투박한 굳은살 위까지 주물럭대고선 11월에 2월생 생일 선물을 생각하는 도윤우. 이휘성도 관리에 허술하지 않으나 나오기 전 도윤우가 해주겠거니 집어 든 핸드크림 내려두고 등교한 거 알면 혼날까 그냥 한 번 욕 먹고 말아야겠다.

 

37. 우수수 쏟아진 빼빼로 중 하나 꺼내먹던 도윤우 단 거 찾지도 않는 애가 웬 간식인지 반대쪽 뒤통수를 짚어 끄트머리부터 뺏으려 들면 이휘성은 묘하게 진동하는 교실의 단내로 빼빼로데이인 걸 눈치채요 이 남고에서 하트 만개한 포장 출처가 여전히 의문스럽습니다. 단 걸 많이 먹지 못하는 도윤우는 친구들과 나눠 먹거나 보관해 둘 텐데 이휘성도 친구 사이에 따로 챙겨주진 않아요 대신 하굣길 도윤우의 가방을 위로 당기더니 열쇠고리 달아주고 내일 학교에서 보자는 인사를 할 것 같죠. 潤 너 이거 설마 전에 가챠 돌 輝 민첩하게 살아 윤우야. 집에 도착한 도윤우가 열어본 가방엔 조금 전 가방 들렸을 때 민첩하게도 욱여넣은 빼빼로가 있더래요 ‘도윤우 몫 혼자 먹어’란 메시지는 갈겨쓴 듯한 필체라 결국 웃었어요. 한편 그가 도윤우에게 보답 겸 받은 빼빼로는 40개 종합 세트.

 

輝 야, 내년까지 먹겠어.

潤 … 뭔 소리야 내일이겠지.

 

37. 교실 선풍기가 애먹은 날 분명 내가 가려주지 않았더라면 넌 창가 햇볕 모양대로 타 얼굴이 말썽이었을 거야 둘 다 발개진 채 늘어진 교실 뒤쪽 자리 손부채질 해대며 얼른 겨울만 와주라 그런 거짓말을 했어 더위가 가시지 않을 때 꺼낸 아이스크림 두 개 중 하나를 주려다 말고 팔 위로 뻗어선 잡으라던 날을 너만 잃기 싫은 줄 알아 윤우야. 나는 몇 광년 너머 있는 행성에 비해 초겨울조차 두터운 이불 없이 잘 수 없는 남보다 조금 커다란 사람인데.

 

38. 눈 올 때 추워지는 게 싫은 도윤우 하얀 패딩 끝까지 올리고서 어기적 걸어가는데 뒷모습 참지 못한 이휘성은 번쩍 안아 올려 눈이랑 친해지라고 너스레 떨겠죠 결국 웃음 터뜨리고 좀 더 쌓인 날 눈사람 만들자는 소리를 하게 해

 

39. 이휘성 애도 추운 날엔 코 찔찔 달고 발개질 텐데 이럴 때 나의 학우 도윤우는 교문 나서다 얼어 죽었을 테니 핫팩으로 따듯해진 손을 패딩 뒤쪽 목에 쑥 집어넣는 장난치며 웃어요. 다른 친구에겐 예외 없이 추운 손 집어넣을 거면서… 세심하다고 해야 할지 바보라고 해야 할지 결국 평소라면 군것질 입에 대지 않는 도윤우가 멈춘 곳은 길거리 떡볶이. 어묵 국물 두 개씩이나 쥔 이휘성 입에 컵순대 넣어주고 자습하러 원중고로 돌아간 날. 마히다. 그치.

 

40. 아이인 휘성 좋아해요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겐 긴장보다 한결 풀어지는 쪽인 이휘성은 아마 상대가 가까운 친구라서인 점이 크겠죠 혼자서 갈무리할 수 있는데도 굳이 곁에 있어주는 도윤우를 의식하기 않기가 어렵습니다. 2학년 이휘성이 어떤 경기에서 패배한 날 기력 빠지는 걸 막기엔 오늘 진 센터에게 그럴 힘은 달렸고, 머리 비울 겸 벤치에 축 늘어지자 도윤우는 달래를 가까이 내밀며 음성 변조된 목소리로 장난쳤어요. 무한정 발바닥을 만져보… 켁. 연기 진짜 못한다. 쉰 소리 멈추고 멋쩍게 달래 앞발만 흔들던 그의 낯 무시한 채 어깨 위로 가만히 기대면 도윤우 역시 더 말하지 않아요. 여기엔 숨만 체온만 품만. 도윤우가 끌어안은 커다란 동갑내기.

 

輝 죽겠다.

潤 그래도 코트로 돌아갈 거지?

輝 응.

輝 오늘만 좀 이러고.

 

41. 누누이 번복하는 이야기 휘성은 농구를 위한 위성이라 다행이라고 도윤우는 교과서 위로 샤프 죽 그어가며 둥그런 낙서를 한다 이휘성의 울타리 속 나는 어느 정도 소속되었는가 계산하여 개선하기 위해. 가까운 사이엔 미래가 염려될 수 있지 못내 헤어지기 아쉬워 졸업을 미루고 싶고. 온전한 타인이 되는 게 서운한가 하면, 또 서운보다 짙은 걸 찾기 위해 연 초록 사전에선 질투와 소유의 낱말은 친구 사이에도 허용된다는 글이 뜰 때까지 스크롤 내리다 이맛살 좁혀진다.

 

뭐 하는…

 

옅은 탄식과 고개 돌아간 도윤우는 이휘성의 셔츠 밑 팔목을 샅샅이 살핀다. 도드라진 핏줄을 통로처럼 훑어 다섯 개로 움푹 파인 갈래 속에 비집고 들어 움켜쥐고 싶다. 그 애가 마주 단단히 얽어 지탱해 주는 상상을 하자 그만 부러진 샤프심이 원형 바깥으로 튕겨 책 사이 빠져버렸다.

 

H 너 이제 그거 엄청 거슬린다.

Y … 뭐? 왜.

H 왜냐니…? 박히면 안 빠지잖아.

H 열 때마다 거기만 꽂혀 있어.

Y 아… 맞다. 거슬리네.

 

긍정하던 도윤우의 속이 차다 이탈해 눈엣가시가 될지 영영 너를 품을지 그저 딸깍대면 튀어나올 인간 관계에서 언제까지 너의 친구로 버틸 수 있을까.

 

42. 구구절절 달라붙은 말로 친구인 척 시늉해도 이휘성은 보일 텐데 외려 도윤우가 자신과 타인을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면 기분이 이상했을 것 같다고. 그래도 사람이라서 열아홉이라서 친구라서 너보다 키가 크고 손이 넓고 무거운 내가 욕심은 얼마큼 쏠릴지 스스로 가늠하기 어려워서. 의식한다는 의미에다 내 신경이 너라는 뜻을 더한 게 좋아해라면 이휘성은 순순히 인정한다. 덧붙일 만한 변명이 없기 때문에. 하여 도윤우가 고작 그 작은 무게에 과민하다 무너져 잡힐 날까지 기다린다. 휘성의 인내는 길지 않으나 버티는 데에 일가견 있는 센터에게 그는 무식하게 사랑스러웠다.

 

43. 큰 사람은 작은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조금 더 일찍 자란 거라는 말 어려진 도윤우를 살피며 이휘성이 대꾸해 주는 상상을 했어요 그러니까 남처럼 조급하게 자랄 필요 없다고 아마 여섯 살 도윤우는 못 들어본 말일 것 같아서. 손바닥이 작고 말캉하고 언제쯤 돌아갈까 심란하던 것도 잠시 이 기회에 피겨 외 놀잇거리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웃기게도 도윤우는 스케이트장에서 가장 눈이 밝아지더라고요. 겨우 진 빠진 도윤우를 응시하더니 헛숨이 나옵니다 우린 돌잡이 행성을 놓을 수 없나 보다. 견고한 노력만으로 이휘성 하나를 추월할 상대가 없을 만큼 세상의 중심이 한가하면 좋을 텐데 하릴없게 날려 부딪힌 몸체가 깎이되 오래도 쥔 주황 행성을 놓치긴 싫으니까. 잘 해내자. 속삭여 재우듯 잠든 이휘성의 주변은 알록달록한 낙서장이 위성처럼 한가득. 도윤우 돌아오면 치우라고 해야지.

 

44.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치면 굳는 게 보고 싶어요 숙소 생활 중인 이휘성은 주말도 학교 근처에 있는데 도윤우 닮은 뒤통수 보곤 도윤우 같다고 생각하죠 그게 진짜 도윤우인 줄도 모른 채…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어떤 이유에서든 간지럽고 들뜨잖아요 생각만 하던 사람을 사적으로 만나게 되는 건. 의도한 만남은 아니었으나 사복 차림도 새롭고 러닝 뛴 자신보다 왜 손 차갑냐는 둥 시시콜콜 떠들다 학교에서 보자는 말로 헤어지는 게 왜 아쉬운지. 6배로 반가운 법 : 유스 캠프 장소에서 마주치기

 

45. 이런 날엔 이휘성의 저지 지퍼를 쭉 내려 파고들면 몽글몽글 닿는 섬유유연제 향을 맡고 싶다 미지근한 살냄새도 좋아 복슬복슬 도윤우의 머리칼이 턱 아래에 닿자 털 찐 여우 같다는 생각과 옷 한 겹 더 입지 열 빠져나가게 대꾸하면서도 잠자코 뒤통수 쓸어주는 아이

 

46. 티저 들으면 생각 많아져요 어떠한 작용에 의해 펀딩 접하게 된 도윤우는 평소보다 힘 들어갔나 묵묵히 들을 뿐인데 잠자코 지켜보더니 의자 넘어갈 때까지 밀어붙이듯 이름 부르는 친구 이휘성. 창피하니까 그만 부르라고 발개진 낯 가리자 이름 부르는 게 좋은 거 아니었나 천연덕스러운 투로 묻겠죠 안 그래도 무거운 애가 장난기 돋으면 여섯 배 묵직해진다. 덩달아 민망함이 옮아 큭큭대면서도 귀 발간 이휘성은 한동안 통화 자주 했을 것 같아요 화난 이모티콘 응답에 굴하지 않고…

 

47. 어려서부터 키도 크고 무감한 성격으로 뒷받침해 주거나 챙기는 포지션이 익숙했을 이휘성의 응석 같은 거, 생각보다 어리바리하고 긴장 풀면 늘어지는 고개의 무게가 묵직해도 큼지막한 어깨 쓸어주던 친구 도윤우. 네가 행성에 도달할 때까지 관측하고 동경할게 우리 아주 오래 이곳에서 살아남자 너라면 몇만 배 더 큰 별을 이룰 수 있어 네 이름은 휘성이잖아.

 

48. 휘성 만약 눈(eye)싸움에서 진 적 없다면 도윤우와 마주 볼 때 일부러 얼굴 가까이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기분 탓인 줄 알았던 낯이 조금씩 근접하자 실수로 눈을 세게 감아버리는데 황당해서 그만 빵 터지는 이휘성. 샐쭉하게 늘어난 무감한 눈 제대로 응시해 보고 싶었는데 귀신의 집도 아니고 점점 가까워지면 당연히 숨 들이마시고 깜빡일 수밖에 없잖아요. 수업 시간엔 도윤우가 많이 이길 텐데 누구는 꾸벅 조느라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49. 도윤우가 흥미롭게 볼 영화 조용한 감정선 멜로 외 공포도 무난히 감상하는 편입니다. 장르별로 여러 작품을 찾아봤는데 어울리지만 아직 열아홉인 도윤우가 볼 수 없는 게 꽤 있어서 아쉬웠어요. 휘성은 장르 가리지 않는 반면 그닥 생각 없거나 집돌이처럼 콕 박혀 보는 스타일 아닐 것 같아요.

 

50. 이맘때쯤 도윤우의 고민은 트리에 대한 거예요 사두면 십이월이야 예쁘지만 내년부터 커다란 짐덩이만 될 뿐이라서. 오늘 학교에서도 작은 걸 살까, 보러 나가면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고민하며 결국 이휘성과 근처 공원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만 즐기기로 의견이 확정됐습니다. 겨울 싫다더니 나름 크리스마스에 대한 로망이 있나 보지. 귀가하는 동안 잘 보일 장소를 생각하던 휘성은 눈 떠보니 허수아비처럼 우뚝 붙잡혀 주렁주렁 장신구 달고 흡족한 듯 웃는 도윤우를 마주하죠. 별에다 길이에다 이만한 트리가 없다고, 아주 만족한… 내용의 꿈을 꿨어요. 다음 날 교실서 마주치면 조느라 따듯해진 볼 늘려 도윤우의 탓을 할 이휘성. 네가 종일 트리 얘기만 하니까 그런 악몽을 꾸잖아. 난데없는 공격에 어처구니도 없고, 한편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후일담으로 누나 말이 곧 법인 도윤우의 집엔 결국 중간 사이즈 트리가 자리했습니다. 뭘 위한 논쟁이었던 건지.

 

51. 추워서 오들오들 이불 속에 정자세로 누운 도윤우. 따듯한 봄이 오면 다시 일어나겠다는 유언 시늉하던 그에게 이휘성은 부활 너무 자주 하는 것 같다고 받아치겠죠. 일순 장난기로 반짝인 눈, 이윽고 도윤우의 이불을 고쳐주더니 기껏 따듯해진 안쪽에 비집어 들어갑니다. 들어올 자리 없다고 대꾸하든 말든 웅크린 몸 뒤에서 끌어안아 발끼리 꼼질대며 조금 몸 녹으면 오뎅탕 끓여 먹자고 할 오늘은 휘성의 외박이에요. 새벽까지 떠들다 까무룩 잠들어도 다음 날 주말 아침에 볼 수 있는 날이요.

 

52. 유스 캠프의 밤 소소한 일탈을 보면 이휘성도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 도윤우가 잠들 때까지 통화할 것 같아요 잠든 사람의 숨을 가만히 듣는 건 애정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탈주에 응한 후배들 뒤로 202cm 팔척귀신인 양 스윽 다가와선 바람 쐬러 나간다고 하겠죠. 떨어진 시간이 긴데 고작 마음 좀 맞물렸다고 삐끗하면 어리광 부리고 싶어지는 게 진짜 이상해요. 삼십 분 좀 안 되는 통화 끝에 끊으려 들자, 거의 잠긴 목소리로 같이 자고 싶다고 부탁하는 도윤우에게 실은 원했으면서 못 이기는 척 숙소로 돌아와서도 한쪽 귀엔 볼륨 낮춘 이어폰을 꽂은 채 조용히 듣다 마주 잠드는 이휘성. 이른 새벽에 깬 도윤우가 먼저 통화를 끊었지만, 통화 너머 이불 뒤척이는 소리조차 달가워 좀 망설였어요 고작 며칠 기다리는 게 어려울 만큼 인내가 닳아서. 개인톡에 올라온 원중 단체 사진 중 휘성 얼굴 확대해 보는 부재의 버릇.

 

53. 권태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진다면 도윤우는 원래 자리가 어디였는지 오랜 시간 방황하겠죠 이별 직후의 후유증이 길 것 같아요. 도윤우에게 연애를 가장 후회할 순간은 헤어질 때. 누가 내 울음을 달래주면 좋겠는데 그 친구마저 이휘성이라서. 이휘성의 경우는 연인과 헤어졌다는 상실감보다 친구와 오래 못 보는 기분이 강할 거예요 허전하기엔 우린 이제 열아홉이 아니고 상대가 없는 시간은 공교롭게도 차곡차곡 흐르기 때문에, 이성적이기 위한 노력 끝 1년, 2년쯤 지나 우리의 진짜 이별을 받아들이다 후유증 겪는 타입. 누구보다 나를 축복했으며 축복받고 싶던 대상이 사라진 것 더듬을만한 흔적도 없으나 감정 빠진 기억으로 되새길수록 사무치는 공허. 보고 싶은 것 같다. 서로의 필요가 다할 날이 올까요.

 

54. 시답잖은 일 매점에서 건빵 사 왔는데 작게 들어 있는 별사탕 보곤 도윤우가 생각난 이휘성. 세 봉지쯤 사다 별사탕만 모아 손에 올려주곤 퍽퍽한 건빵은 숙소 친구들과 우유 곁들여 먹었다는 후일담. 설탕 덩어리가 너무 달아. 어릴 적 노란색 하얀색 설탕 덩어리만 모아 작은 공병에 담아두던 도윤우는 여름날 뙤약볕 아래 그만 녹은 사탕처럼 눈물 뚝뚝 쏟았죠 백 개 모아 누나한테 자랑하고 싶던 마음이라. 그 시절 달고 쓰린 추억 살려준 보답 겸 다음 날 휘성에게 돌아온 별 모양 쌀과자. 네 배 채우기엔 이게 낫지.

 

55. 자지 않기 위해 노력해도 졸게 되는 휘성을 느리게 훑더니 그의 손 위로 작은 물체 쥐여주고선 볼펜 끄적이는 도윤우. 손바닥이 간지럽고 뭔지 궁금해도 낙서겠지, 외려 졸린 찰나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잠 깨라는 신맛 사탕을 준 거였어요. 이휘성은 수업 빼먹어도 그 독보적인 원중의 주전이니 가끔 눈총받되 피해 볼 거 없지만 굳이 받아먹고 웃음 참느라 잠도 사라졌겠죠 레몬 맛과 손바닥 위 잉크 자국이 번진 오후 훈련 후, 교실 책상에서 레몬 향이 나는 착각. 잉크가 밴 모양이다 여태 글자대로 간지러운 걸 보면.

 

56. 휘성에겐 여전히 의문인 게 있어요 키가 얼추 비슷하거나 낯익은 농구부 사람은 괜찮다지만 179cm밖에 되지 않는 도윤우는… 그런 시점서 왜 자신을 좋아했을지 타인과 함께일 때 고개부터 바짝 숙이는 버릇 있던 이휘성은 순수하게 궁금할 것 같아요. 분명한 건 멋있다, … 사랑스럽다? 그런 감정은 쉽게 들 수 없을 텐데 생각에 잠기면 턱 꾹 눌러 바보 같은 표정 짓지 말라고 하는 도윤우. … 첫인상부터 바보였던 거 아니지? 생각이 더 깊어집니다…

 

57. 서사 요약표에도 기재했듯 본인 삶 외 심드렁한 면이 강했던 도윤우는 물론 이휘성을 크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크고 맹한 애쯤이었어요 알아서 잘만 지나가는 교실 문이 신경 쓰이고 굴러떨어진 펜 줍는 폴더폰 자세가 상상돼서 먼저 챙겨주고. 그래서 정확히 어떤 부분이 좋았냐고 물으면 상황마다 나오는 답이 다릅니다 이름부터 신장과 성격, 버릇까지 관측한 것들을 늘어둘 뿐이에요. 오늘 까닭은 너는 웃을 때 생각보다 앳된 얼굴이라서 좋아했다고 할게.

 

58. 202cm 몸 구겨 좁은 품에 기어이 자리 차지하면 하나뿐인 심박을 듣다 느른해진 눈가 쓸어준 손 위로 코 찡그리고 잠드는 이휘성. 관찰할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 불빛에라도 네 수면이 별을 꾸러 가지 못하고 선잠처럼 깨울까 봐. 반면 휘성은 잠든 도윤우 두고 일정하게 등 쓸어주되 휴대전화 볼 때가 드물지 않은데, 툭 떨어뜨릴 세기로 찰싹 때리고 다시 자는 도윤우를 볼 수 있어요. 오묘한 고양이의 하악질 같다. 이유 물어보면 왜긴, … 너도 나 관찰하라고.

 

59. 많은 거 안 바라 딱 너만 한 사이즈 도전해 보자 그 실없는 소리 어처구니없게 웃더니 내가 이미터까지 쉽게 큰 줄 아냐며 발간 코끝 꼬집고 물 뿌려야 단단한 눈사람 만들 수 있다는 대화 나눌 계절 그거 단단하게 고정해서 뭐 하려고.

 

60. 휘성의 투박하고 굵은 손을 좋아해요 피곤할 때 그 두 손 끌어와 손바닥 위로 입 맞추면 익숙한 듯 받더니 이내 도윤우의 얼굴 콱 감싸는데, 농구공보다 체감상 작은 머리통 한 손 그대로 쥐어지자 외려 당황할 것 같죠 도윤우 진짜 작네. 평균보다 큰 본인 덩치는 남 일인 것처럼 뺨 주물럭대다 딱딱한 굳은살뿐인 걸 보기 좋은 듯 여기는 게 신기하단 말엔 네 삶이 박인 건데 뭐가 안 좋냐는 답을 들어요. 이 앤 별거 아닌 일만 머리 굴려서인지 이상한 데서 부끄러움이 없다.

61. 도윤우 겨울이 오면 두터운 이불 두 개쯤 쌓아 보일러까지 켜고서 뜨겁게 겨울잠 청하는데 올해는 하나만 덮어도 충분히 따듯했던 이유가 뭔지 강해진 면역을 생각한 그날 밤 백 키로에 달하는 사람과 반쯤 포개진 채 잠들기 때문인 걸 알게 된다.

62. 동그란 쿠키 오독 씹어 먹는데 두 개를 나란히 올려 눈사람이라고 했을 때 일순 황당한 듯 흘겨보다가도 하나 쏙 빼먹어 눈사람 살인 사건이라고 대꾸해 줄 친구가 없다는 것 이휘성의 부재.

 

63. 영락없는 고등학생 이휘성 네 바보 같은 얼굴이 환할 때 큼지막한 손은 어느 별을 쥐고서 충돌할 때 하나씩 네 우주가 완성되면 초대해 줘 빈틈없이 축복하며 자취를 남기려고 그날 내 자리에 앉아 천연덕스레 힘으로 끌어내라던 탓이야.

64. 비시즌의 성인 도윤우 오랜만에 집 머물 때 반겨주는 달래를 폭풍 예뻐해 주며 오빠 보고 싶었지, 잘 있었어? 같은 흔한 반려인의 안부를 건네는데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달래 있던 자리 그대로 쑥 들어와 예쁨받는 202cm짜리가 함께 삽니다. 이렇게 큰 개는 어느 집에서 들어왔지. 장난스럽게 놀리자 느른하니 풀린 투로 도윤우 까부네 한 마디 뱉곤 피곤했을 도윤우 마주 안을 겸 대기 중이던 달래 코 쿡 찔러 유치해지는 이휘성.

65. 새벽 세 시 상대를 위해 하겐다즈 사러 나갈 수 있는 헌신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는데요 이휘성은 그냥 본인이 당길 때 나갈 것 같아요 여름 외 차가운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는 도윤우가 굳이 그 달달한 얼음덩어리를… 본인 몫 아이스크림 살 겸 도윤우픽 간식까지 사다 두 봉지 바리바리 싸 들고 귀가하겠죠 어딜 그렇게 나가나 했다 예상한 듯 이불 둘러맨 채 한숨 쉬고 주섬주섬 한쪽은 하겐다즈 바닐라 맛 한쪽은 닭가슴살 소시지 우적대며 OTT 시청 중. 마히다. 그히.

 

66. 남학생끼리 서슴없는 거리감, 게임 중인 도윤우의 자리로 굳이 앉아 본인 무릎에 앉혀 구경하는데 새삼 어깨 얇고 허리 한 줌이에요 근육뿐인 거 아는데도 복부와 허리 주물럭대다 놀란 도윤우가 책상 아래 무릎 쿵, 박으면 덩달아 이휘성도 당황합니다. 미안, 간지럼 타? 설마 내가 잡아먹겠냐는 식의 우스갯소리 직접 내뱉고도 찝찝하겠죠 무의식에 의식하게 되는 것들의 위험도를 열아홉에게도 가르쳐야 하지 않나. 결국 게임 져서 죄인 이휘성 씨가 신기록 깨주시기로.

67. 탄생화보다 상징화에 관한 이야기가 즐거워요 이휘성은 처음부터 꾸준하게 별꽃으로, 도윤우는 사프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졸업할 땐 라일락을 달아주고 싶어요 내 ___ 되어준 너에게. 사랑일지 우정일지 추억일지 과거일지 한 끗 차이 투성이 태연한 졸업 축하가 서운할 관계 난 그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했을까 보고 싶던 걸까 모르겠어 우린 너무 어리거든.

68. 도윤우는 입에 뭐 넣어줄 때마다 확인부터 하고 받아먹는데 이휘성은 무심코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받아서 장난도 쉽게 당하겠죠 다만 음식 씹는 세기로 깨물었다가 장난친 쪽도 문 애도 기겁하는 상황 발생.

 

潤 … 넌 치악력도 끝내준다.
輝 우리 아직 잇몸으로 씹을 나이 아닌데.

잇자국 선명한 검지 살살 쓸어주며 다음부터 잘 확인해야지 생각했으나 사람 쉽게 안 바뀐다고 네 번쯤 더 당했어요. 알고서 당한 애와 의식하고도 잊은 애 둘 다 덤 앤 더머 바보…

 

69. 그래도 연말이니 케이크 한 조각은 먹어야지 나누려다 이미 전투적으로 드신 흔적이 적나라한 이휘성의 입가 닦아준 뒤 어깨에 기댄 채 깨작거리는 도윤우. … 네 취향 아니지? 귀신같이 파악 빠른 줄 알았지만 트리 응시하는 도윤우를 내려보다 눈 딱 마주쳐서 타이밍 좋은 눈치가 튀어나온 거겠죠. 입 벌려 남은 몫 받아먹곤 따듯한 장판 위 영화 보든 일찍 자든 성인 되기 전 성탄절도 평화롭게.

 

70. 선풍기 앞에 앉아 괜히 입 벌려보듯 눈 오면 먹고 싶다는 충동 들어요 강아지도 예외는 아니겠죠 소복하게 쌓인 눈 위로 뛰어들어 몸 굴리고 토다닷 먹는 달래 휘벅휘벅 안쪽까지 들어가 꺼내자 이게 강아지인지 고도의 눈사람인지 싶은 형체가 이휘성 품에 쏙. 추위도 많이 타 겨울 산책 때마다 옷까지 따듯하게 입히는데 왜 눈만 보면 돌진하는 걸까요 도윤우는 달래 연행하느라 여념 없고 이휘성은 코 훌쩍이며 모자 챙겨주기 바쁜 정신 사나운 겨울 산책길.

 

71. 피겨는 종목 중 두 번째로 많은 체력과 근력이 필요해요 센터인 이휘성에 비해 밀리는 건 맞지만 모자란 건 아닌 도윤우 잘만 하면 이휘성 상대로 팔씨름을 이길 수 있겠다고. 시작과 끝이 쫄? 투성이일 자존심 센 운동부 남학생 둘 도윤우가 철저히 패배하는 게임이 있다면 허벅지 씨름이에요. 실컷 이기고 나서야 바보 같은 얼굴로 머리 헝클리기.

 

星 힘 뺐으니까 밥 먹으러 가야겠다.

雨 배는 안 고픈데.

星 너 말고 나.

雨 (.ㅍ.ㅍ)…?

 

72. 눈싸움에 져본 적 없을 만큼 자신 있고 여유로운 애가 도윤우 상대로 얼굴 가까이 한 건 정말 ‘굳이?’ 싶은 행동 같아요 장난치고 싶던 마음 반 그렇게 해도 이길 만하다는 마음 반이었겠죠 웃음 터진 건 귀엽길래. 반복할수록 적응하겠지만 그때까지 이휘성이 상대해 줄지는 모르겠어요. 고개 뒤로 무르기보다 외려 다가선다면 이휘성도 당황할지 이건 불리한가. 너를 좋아하는 나한테.

 

73. 이휘성 수상할 정도로 눈 맑아지면 도윤우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도망 못 치게 옷부터 붙잡는데요 어차피 잘만 토다닷 가겠지만 작뿡화가 된다면 이휘성보다 도윤우 쪽이 외려 지능 넘쳐 보이는 까마귀인 게 좋아요.

 

74. 휘성 본가에 놀러 간 도윤우, 소파에 앉은 뒤통수만 보고 늘어진 이휘성으로 생각해서 팔 두른 채 뭐 보냐 물었더니 누님이셨을 때 잠깐 간식 사러 다녀온 이휘성은 왜 도윤우가 우리 누나한테 무릎 꿇고 있는지 말로 듣던 시월드? 아이러니한 상황 관전 중.

 

星 도윤우는 나인 것 같으면 막 안네.

雨 묻는 핀트가 이상하지 않아?

星 우리 아빠였으면 어쩌려고.

雨 몰라... 나 찍혔어

星 ... 많이?

星 나한테.

雨 장난 좀 치지 마 제발...

 

75. 한 해 마지막인데 영 실감 안 나요 이제 성인일 도윤우는 심드렁한 여느 때와 달리 찝찝하겠죠 하루 사이 물가 속으로 밀려나 방향은 잡을 수 있을지 헤엄치는 길이 맞는지 그래도 친구들이 있었는데 정말 혼자의 종목이 되어버렸으니까 강아지 달래를 챙겨 확인한 연락엔 술 사러 시동 거는 원중 친구들이 담긴 사진과 발신인 이휘성. 너도 설레? 설레진 않고, 머리 아파. 기복 없는 대화 속 오늘 만날까 운 떼면 답 오래 고르더니 몇 시? 로 답한 휘성의 손은 발갛고 코끝이 뿌연 채로 덥석 좋다고 할 뻔했다.

 

76. 비 오는 날 입 맞추고 싶어 머리부터 발까지 기분 나쁘게 젖는 축축함도 좋아해 기꺼운 듯 기꺼이 꿉꿉할 온도를 받아줘 눈과 비가 내려 하얗기보다 질펀한 색이 덮은 곳에서 언젠가 싹이 틀 것처럼 이휘성은 도윤우를 끌어안고 윤우는 휘성을 응망하고 성과 우가 맞물리면 우린 비의 속도로 빛이 될 수 있어.

 

77. 이휘성도 피규어 나오면 좋겠어요 유심히 만지더니 머리 부분 뚫을 수 없겠냐고 묻는 소리에 사색 된 휘성. 일반 키링처럼 가방에 달고 싶다는 뜻이었지만 역시 어려웠고 그럼 어디 둘까 내심 궁금했던 휘성은 도윤우의 사물함을 열었을 때 궁금증 해소했을 것 같아요. 책 꺼내기 불편하게 왜 여기 전시해 둔 거지. 잠깐 고민하다 몇 시간 뒤 도윤우가 다시 열었을 때는 피규어 옆 구겨진 종이 위로 그려진 눈물점 고양이가 까꿍. 종이의 구김만큼이나 이휘성도 구겨진 채 그렸을 게 훤해서 귀여워요.

 

78. 자고 일어나면 키 큰다는 말 믿을 거 하나 없다고 도뚱도뚱 걸어가 좌절하듯 푹 쓰러지자 너 그다지 평소와 차이 안 난다 발언으로 솜주먹 20대 맞는 이휘성. 유일한 장점은 후드티가 더 따듯해졌다는 거예요. 정신까지 어려졌다면 도윤우 선수 이미터 등반 성공 이휘성의 머리로 기어 올라가 뿌듯했겠지만 당장 피겨 걱정부터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교훈 얻고 어차피 작아졌으니 미끄럼틀이나 신나게 타기로… 근데 숨바꼭질은 치밀하게 못 하더라고요 왜 그네 뒤에 숨어 도윤우. 다른 덴 높아.

 

79. 세상이 좀비로 들끓는다면 누군가 미끼로 쓰여 하나쯤 살릴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사라진다 살릴 거란 계산하에 팔뚝 같은 부위를 물어뜯기고 돌아온 도윤우에게 이휘성은 어떤 표정이었지. 무모하게 굴지 않아도 충분했어. 소리 큰 화를 억누르자 그럼 네가 싸우게? 팔이든 다리든 어깨든 엿되면 어떡하려고. 아마 거친 대꾸가 도윤우의 본성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최악에 몰릴 때 드러난다고 하니까… 이제 와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죽을 텐데 내일 없이 굳이 호흡할 필요가 줄면 이휘성은 도윤우의 굳은 몸체 흔들고 의미 없게 지혈하며 불명확한 표정을 지었다 넌 뭐 때문에 그랬는지 너도 선수가 되고 싶어 했으면서 선수의 명예보다 명예로운 희생 한 끗의 꿉꿉함 농구 다시 하자 그게 겁 없는 친구의 거창한 유언이라고. ______ 좀아포 세계관에선 사랑이 일러 연인보다 아직 친구인 점을 좋아합니다 막바지 몰린 사람의 본성, 이휘성은 안정을 되찾았을 때 미제가 된 愛를 불현듯 도윤우에게 붙여요. 너와 있으면 엉뚱해도 답이 좀 나오길래. 너도 그랬을 테니까. 그래서 나를 우선에 둔 거지 도윤우. 무겁게 다뤘으나 둘이라면 헤치우고 휘벅휘벅 윤벅윤벅 잘만 돌아갔을 것 같긴 해요. 도윤우는 외려 좋아해를 알지 못해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죠 좋아했다면 휘성과 있고 싶어서 그 순간 망설이지 않았을 자신이 없기에. 실은 네 이어폰의 볼륨을 조금 높여뒀어.

 

80. 어릴 때 유치를 어떻게 뽑았을지 궁금해요 부모님의 도움이 보편적이지만 도윤우는 본인 유치가 덜렁이는 줄 모르고 엄마 몰래 카라멜 받아 먹다 벌 받았다며 누나 올 때까지 울었었어요. 평생 앞니 없이 어떻게 살지 인터뷰할 때 껌 붙여서 해야 할까 눈물 젖은 일기장을 현재 이휘성에게 들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고 도윤우 이는 자일리톨이네 장난칠 것 같죠. 그러나 이휘성도 어릴 때 셋에 뽑는다면서 둘에 당긴 어머니께 배신감 느꼈었다고.

 

81. 화단 물 주기 위해 구비된 텅 빈 분무기를 도윤우 머리로 우두커니 조준한 이휘성. 너 속으로 쑥쑥 크라고 했지. … 아닌데? 살짝 정곡 찔려 분무기 내려두곤 은근 남의 속 잘 알아챈다고 생각하겠지만 훤한 행적인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나. 바보인가…

 

82. 건조한 날엔 살이 트기 쉬워요 막 자고 일어나 비몽사몽 상태의 이휘성은 평소보다 볼 발간 채 어깨 위로 기대는데 비교적 얌전할 때 얼굴 곳곳마다 로션 발라주는 도윤우 해주는 사람 생기면 직접 하기 싫더라고요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인가. 정작 도윤우의 뺨도 건조해서 김빠진 소리 내 웃곤 로션 둥글게 짜 성심성의껏 문질러주겠죠 1월 겨울을 체감한 날 둘은 서로의 겨울나기를 챙깁니다.

 

83. 이휘성 띠부씰 빵 같은 데에 있어도 귀여울 것 같아요 별 생각 없이 하나 샀더니 티라노와 눈 마주치곤 일주일 뒤 직거래 나온 사람의 글 제목엔 띠부씰 팔다 피겨 선수 만난 썰 푼다. 같은 학교 친구래. 빵이 부담스러워서 구한 건데 몇 배는 더 민망한 일 발생. 스티커 모으는 취미거나 의리 지킴이로 얘기 돌겠지만

 

星 너 내 스티커 갖고 싶었어?

雨 … 아니라고. 입.

 

이휘성은 한동안 놀리느라 재미 붙이고 기분 좋았겠죠 이미 뽑은 티라노는 졸던 휘성 이마에 잘 붙여뒀어요.

 

84. 처음 집에 이휘성 데려갈 때 달래가 경계할까 봐 내심 걱정한 도윤우는 짐 풀기도 전 배부터 깐 달래와 열렬히 쓸어주는 이휘성으로부터 내가 외부인인지 진한 박탈감을 느꼈어요. 심지어 어깨로 올라가려 하더라고요 넌 강아진데 뭔 캣타워지. 달래야 네 오빠 되게 속 좁다.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며 손은 달래한테 뜯기는 이휘성. 가고 나면 왜 다른 오빠한테 함부로 배 까냐고 발바닥에 얼굴 마구 비빌 것 같죠. … 달래 너도 마음에 들어? 강아지는 주인의 변화에 예민하다고 해요 평소엔 온몸의 불 다 꺼지면서 생기를 되찾게 하는 사람을 모를 리 없으니까. 이휘성의 손 타는 것도 기분 좋지만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 = 나도 좋다쯤.

 

85. 교제하게 된 둘 여자친구 있냐는 질문에 도윤우는 잠깐 망설였을 것 같아요 표정 관리가 능통한 편도 아닌 만큼 옆에 있는 이 친구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대꾸할 뻔해서 이휘성 시점엔 주저한 걸로 보였겠죠 결국 옆구리 꼬집혔습니다.

 

星 대답이 느려.

雨 당황해서, … 야. 아파.

 

입은 또 세모로 삐죽 올려 쳐다보길래 턱 꾹 누른 채 이건 이거대로 또 귀엽다고 생각할 도윤우. 사실 연인이라는 말도 입에 잘 안 붙어서 손만 잡으면 화들짝 놀라 밀어낸 적 있어요 그땐 귀엽기보다 거슬린 얼굴이었지만… 외려 사귀기 전이 스킨십에 거부감 없지 않았나 생각 들면 그땐 의식해도 참아야 했다는 대답 듣고 도윤우의 품까지 고개 콕 박아 이번만 봐준다 웅얼거린 이휘성 또한 자신의 키처럼 커진 욕심을 잡기 위해 노력 중.

 

86. 성인 이휘성 술 취했을 때 손에 잡힌 도윤우 뺨 꾹 눌러선 장난스레 머리통 와앙 먹으면 익숙하게 택시 잡아주거나 덩달아 취했을 경우 나 맛없다고 늘어지거나 하나인 도윤우 얼굴이 발간 도윤우와 달리 조금 추울 뿐 겉으로 큰 티 안 나던 이휘성은 그래도 실없게 웃는 얼굴을 더 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요 그럼 또 그게 예뻐서 한참 쳐다볼 테니까 시선이 친구로부터 떨어지지 않는 친구.

 

87. 우리는 물 없이 살 수 없어서 비쩍 마른 갈증보다 익사를 고르니까 우리의 태초는 물을 사랑한 거고 사람의 몸은 수분으로 이루어졌고 하필 네가 폐부 깊숙이 자리할 우기雨期였던 거고 커다란 덩치로 빈틈없이 안아 빠듯하게 들이마시는 상상을 한다 나는 네가 먹는 양의 배를 섭취해야 하며 압도적인 무게와 체격을 갖추고도 너는 내 욕심이 작은 줄 착각해서 내 인내는 곧 백 킬로의 남성을 버틸진대 수업 시간 졸음은 못 이긴 내가 너에게 중요했던가

 

88. 휘성의 흐트러진 모습 귀엽죠 졸다 깼을 때 묘하게 붕 뜨고 부스스한 머리라든가 경기 후 땀 범벅인 것도 평소의 멀끔 이미지와 차이점이 있어 이따금 어느 학교 센터처럼 머리를 위로 올리면 어떨지 상상해 보는 도윤우 외박한 날 잠든 얼굴 구경하다 슬쩍 앞머리 올려 실천하곤 했는데 다 알면서도 집중한 도윤우를 흘겨보기 위해 자는 척했던 이휘성 덕에 스타일 변화보다 정신 빼놓은 사이 흐트러진 게 좋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89. 수학여행 밤의 재미 정신없는 베개싸움 끝에 도윤우 옆자리로 누워 큭큭 웃던 이휘성, 머리칼 장난스레 흩뜨리고 소등하면 그 애가 뒤에서 끌어안아 주는 상상을 해요 돌아누워 휘성과 마주 볼 재주도 없는 것치고 대담하죠. 결국 이불 고치는 척 마주 보는 자세로 바꿨더니 휘성도 느른한 눈만 슴벅일 뿐이라서 그의 이불을 쥐어 춥다며 코 찡그렸고 이러는데 피겨는 어떻게 하지 장난치듯 건드릴 이휘성은 타인의 손 하나가 안쪽에 들어선 채 잠든 날. 자? 묻기엔 다른 애들의 잠까지 덩달아 안 깨우도록 이불 속 손만 까닥여 이휘성의 손목을 툭 누르거나 미동 없는 낯 응시하거나. 도윤우는 손 뻗느라 굳은 자세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까무룩 잠들었을 것 같아요. 새벽쯤 누가 잡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눈 떴을 때 두 손 얌전히 모인 상태였나.

 

90. 도윤우가 멸종되기 좋은 날씨 이휘성은 아침 댓바람부터 귀도리를 챙겨 교문까지 가더니 무슨 꿍꿍이인가 보면 등굣길 도윤우에게 씌워주는 중 새빨간 코가 루돌프 같다던 너도 코 훌쩍대는 바보처럼 생겼어 양쪽에 넣어둔 핫팩으로 감싸줘야지

 

雨 너 때문에 항상 핫팩 두 개 뜯어.

星 네가 추워서가 아니고?

雨 … 겸사겸사.

 

91. 이불 속에 있느라 체온 높아진 도윤우 위로 누워 끌어안고 시간 좀 보내려는데 하필 전화 와서 마주보다 체념한 듯 몸 일으키는 이휘성 귀여울 것 같죠 메시지 보내는 동안 앞머리 헝클려주기. 요즘은 성인 시점을 풀고 싶어져요 학창 시절 온전하지 못한 이야기로부터 비롯된 미래는 어떨까 상상해 보는 게 즐겁습니다 함께가 아니라도 예쁠 거야 너와 내가 만든 궤적이 도운 미래일 테니.

 

92. 처음에는 이휘성도 성 붙이기보다 윤우라고 많이 불렀는데 낯간지럽다고 의식한 도윤우 때문에 본인까지 덩달아 생각하게 돼서 성 붙여 부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근데 도윤우 넌 다른 애들이 부를 때 낯간지럽다는 소리 안 하잖아. 그 질문을 할 걸 왜 바보처럼 잠깐 사색 된 척 대꾸하다 만 건지 후회되기도 해요. 윤우라는 이름 귀엽지 않나. 초성도 동글동글… 내일은 성 떼고 불러야지.

 

93. 이휘성 손은 크고 따듯한 줄 알았는데 몇 번씩 우연히 잡게 될 때면 겨울엔 차갑고 여름엔 땀도 많이 흘리는 편이라서 여태 잡을 상황마다 데우고 닦고 내민 배려가 사람 기분 이상하게 한다 원래 친구한테 그렇게까지 해? 피차 같은 체육인끼리 땀 좀 묻고 같은 성별끼리 무신경하면 어떻다고 넌 세심할 줄 알아.

 

94. 도윤우는 웃을 때 보조개가 생기는데 아는 사람은 드물고 그 부류에 속한 게 이휘성인 점을 좋아해요 괜히 한 번 쿡 찔러보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고, 영문도 모른 채 찔리기만 한 도윤우… 보조개 있는 걸 기사 사진으로 알아버린 케이스.

 

95. 안드로이드 이휘성과 과학자 도윤우, 기계라기엔 희로애락을 느낄 줄 알고 휘성도 감정을 티 내지만 그럴수록 완곡히 거부하며 입력된 데이터라고 설명해 주겠죠 결국 세계가 행성 충돌로 무너졌을 때 도윤우를 지킨 이휘성에게서 고철은 볼 수 없었습니다. 이건 그냥 기억 잃은 과학자와 기억을 보관해 둔 안드로이드의 이야기. 사람은 일정량이 지나면 백업이 둔해진대. 죽었을 때 우리와 비슷한 쇳내가 난대. 그렇기에 안드로이드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데... 미안해. 서로의 시간이 거꾸로 흘러 도윤우는 이휘성이 휘성을 잃을수록 정체성에 혼란이 왔었어요 나도 너와 똑같지 않을까? 도색이 벗겨지고 코드가 입력되어도 내가 너를 속인 것처럼... 그러나 차이점은 금방 깨닫게 되죠. 나는 네가 가르쳐 주지 않은 건 할 줄 몰라. 나는 탯줄을 가져본 적이 없어. 나는 죽음의 사전적 정의는 가져올 수 있어. 그래서 이 상황을 대범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 옆에 누워선 휘성이 그랬듯 허름해진 이불을 끌어와 덮어주고, 방전될 때까지 쳐다볼 도윤우. 창백한 멸망, 난파된 위성, 중심에 있는 너와 나. 버려진 행성의 콘크리트 속 파일럿.

 

96. 이제 눈 내릴 정도의 추위는 없을 것 같은데 목도리와 장갑까지 단단하게 둘러 다니는 도윤우는 안 더운지 교실에서 벗을 때 슬쩍 흘겨봤더니 이휘성 예상을 빗겨가 손과 코끝이 발간 상태라 사람의 기본 체온도 없나 핫팩 꾸역꾸역 내밀었다고. 사실 도윤우도 갑갑할 때가 있지만 추운 것보다 푹푹 찌는 열감을 선호해서 따끈하게 다닙니다 사용된 핫팩 개수가 줄어 행복한 도윤우의 근황.

 

97. 겨울엔 귤 먹고 싶어요 달다고 해서 샀더니 신맛의 종지부라 오만상 찌푸릴 이휘성 귀여울 텐데 먹기엔 속 쓰릴 만큼 셔서 결국 귤껍질 누가 더 안 끊기고 길게 벗기나 내기하는 중. 운 좋게 단 귤 나오면 잠자코 서로 입에 넣어주고 또 까기.

 

97. 자고 일어나면 얼굴 부기 빼고 연습 가던 도윤우의 아침 루틴 슬쩍 통통해진 뺨 주물럭대며 전날 밤 안 팔린 찐빵 같다고 생각하는 이휘성, 여름엔 나란히 더위 날릴 겸 시원한 아이스팩 문대고 나비 앉은 개들처럼 멍때리기

 

98. 떠들다 생각한 건데 무감한 장난꾸러기 이휘성 귀여워요 안 그럴 것처럼 생겨선 정수리 누른다거나 말장난도 종종 치고 황당한 듯 반응 보이면 웃어주는 얼굴이 좋아서 알고도 당해주게 되지만…

 

99. 동화 비슷한 AU 개념으로 왕실 기사 이휘성과 인어 도윤우를 생각한 적 있어요. 허영심과 욕심뿐인 왕에게 붙잡혀 온 귀한 인어를 탈출하지 못하게끔 감시하는 역할인데, 욕조용 오리 선물이 가져온 인연의 시작 (실험 요소 O) 

 

雨 어디에 쓰라고 막 던져.

星 … 뭐야? 너 말 할 수 있었어?

雨 뭐냐니까.

 

지루한 건 도윤우든 이휘성이든 마찬가지였겠죠 하루 모조리 쏟아 감시해야 할 대상과 친해져선 안 되겠지만… 둘의 공통점은 인어의 뭐가 아름답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가치관.  심해에서 살 인어가 아름답고 고혹적일 리 없으니까. 그럼 도윤우는 왜 환상 속 인어 형태를 띠고 있는가 하면, 역시 인간의 욕심이 만든 실험체였던 것도 알게 됩니다 부모님과 누나 그들은 인간 다리가 있어, 이는 망상이 아니라고. 막상 탈출은 유치하고 수월했을 것 같아요 큰 사건이 터졌을 때 냉큼 도윤우만 챙겨 휘다닷 휘다닷 뛰며 한 말이, 난 너보다 튼튼해서 별문제 없어. 그 애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방법을 모색하던 중 현실에선 도무지 가능한 길이 없고 난관에 빠지는데… 애초에 인어는 가상 속 생물이니 비현실적인 성질을 써야 돌릴 수 있는 건가. 고뇌하면 왜 그렇게까지 한 명 때문에 애쓰냐고 묻겠죠 이휘성과 직접 관련된 인물도 아니니까. 예민한 성격이 주위 영향인 게 싫었고, 유일하게 경계를 푸는 상대는 나잖아. 그럼 당연히 돕는 것도 나여야지. 도윤우는 구출된 날부터 빠짐없이 이휘성을 동경하고 애틋했겠으나 다시 사람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휘성의 동정을 깨닫자 벗어나고 싶다고 부탁할 거예요. 전문가에게 넘기는 게 쉽지만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말이 싫던 이유는 쉬운 게 옳다는 뜻과는 별개라서.

 

星 보내기 싫어.

雨 … 왜?

星 이유가 필수야?

雨 다리 대신 명분이라도 줘.

 

장난기 어린 음성이 속삭이듯 오가던 거리가 가까워지자 결국 돌아온 도윤우의 다리. … 너 인어공주야? 겠냐고. 황당하게 번갈아 본 이후의 생활은 마법처럼 함께라는 해피엔드. 쉽지 않은 길도 얼렁뚱땅 풀어나갈 유치한 사랑의 양면성은 질리지 않는 소재예요 사랑과 용기만 있으면 다 되는 동화 우리도 겪자.

 

100. 체급 차이 맞춘 일반적인 퍼리화에선 도윤우를 ‘스라소니’로 정했어요 실제 스라소니는 늑대와 경쟁하며 천적이기도 한 포식자라던데 원중고에 입학한 도윤우가 겉돌고 적응하지 못하던 시기를 고려한바, 상징 동물인 까마귀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101. 대전 내려가던 기차 안에서 깜빡 선잠 들면 마주 잠든 도윤우 어깨를 자연히 빌린 채였는데 함부로 몸 일으키다 깰까 위치만 옮겨 이번에는 그 애가 기대도록 어깨 내어준 이휘성. 지켜보자니 덩달아 또 나른해져서 도윤우 머리를 빌려 기대곤 기차 소리와 다시 한번 눈감는다. … 도윤우가 왜 따듯한 걸 고집하는지 알겠네.

 

102. 한기 많은 종목의 도윤우가 열기를 중심으로 경기하던 이휘성과 함께면 온기 이룬다는 점을 좋아해요 올바른 방향 온전한 신뢰… 비롯된 오로지 애정뿐 나 너무 차갑지. 그럼 내가 더 더워질까.

 

103. 이휘성의 방문이 적고 익숙지 않던 고교 때와 달리 대학교 들어가면 하룻밤 묵고 나가는 경우가 잦을 듯하죠. 샤워 마치고 나온 이휘성을 기다린 것처럼 수건으로 감싸며 집안 추우니까 머리 말리자는 잔소리하는데 문득 예전엔 같은 남자끼리 상의만 벗어도 의식하고 놀란 도윤우는 어디 가고 적응한 건지 볼이나 꾹 누를 이휘성. 그때는 당황하는 모습에 외려 의아했었지만 이 애가 나를 의식한 게 그만큼 오래됐다는 의미니 귀엽기도…

 

雨 … 뭐해? 머리 말리라고.

星 드라이기는 왜 겨눠?

 

104. 이휘성 대전 사투리 안 쓰는 거 내심 아쉬운데 느긋하고 여유로운 투가 습관처럼 있다는 설명 듣고 과연 아주 없을지 싶어요 무심코 튀어나온 추임새를 도윤우가 적응한 가능성이 높다.

 

105. 버스 탈 때마다 몸 구기느라 목부터 허리까지 안 불편한 데가 없으면서 굳이 도윤우 연습장 보러 가고 추위 타는 게 뻔한 발간 코 킁 들이마신 채로 귀갓길엔 굳이 몇 정거장 일찍 내려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주는 바보들의 배려 애정 욕심

 

106. 별 모양 따라 쿡쿡 찌르는 달고나 뽑기 덩치 큰 남학생끼리 쭈그려 앉아 야심 차게 도전했으나 이휘성은 막판에 뚝 부러지고 도윤우는 처음부터 망해서 달고나빵 먹고 있었다. 달긴 한데 생각보다 텁텁하고 역시 쉽게 물려서 우두커니 부러진 달고나와 달고나빵 쳐다보다 입으로 뜯어먹은 부분 빼고 다른 애들 주자 합의하여 뒷정리. 이휘성이 부러뜨린 달고나는 도윤우가 가져가 사진 찍고 여태 보관 중이에요.

 

107. 도윤우는 이휘성의 유니폼과 등번호를 좋아할 것 같죠 미온의 친구가 선수로서 뜨겁게 빛날 순간을 담아낸 물건인데 멋있잖아요 괜히 타인인 척 팬 시늉하며 사인받고 싶고 수고했다고 끌어안을 때 그대로 전해지는 열기도 기껍고. 도윤우는 이휘성의 유니폼과 등번호를 좋아할 것 같죠 미온의 친구가 선수로서 뜨겁게 빛날 순간을 담아낸 물건인데 멋있잖아요 괜히 타인인 척 팬 시늉하며 사인받고 싶고 수고했다고 끌어안을 때 그대로 전해지는 열기도 기껍고.

 

108. 기복 없이 흐른 감정에 도윤우는 우정보다 사랑이 견고해질 리 없다고 여겼으나 내리쬔 햇볕을 등지고서도 화사할 때 매미 울음보다 귓가를 북받친 이명이 파란을 일으키면 단시간 겨울의 철자를 잊어버렸다. 내 안에서 흐르면 어떡하나. 나는 빙상 위 사람인데.

 

109. 식사 자리에서 주로 챙기는 역할의 이휘성 사과 깎는 것도 무난하게 할 텐데 처음은 어색하게 깎던 도윤우가 능숙해진 계기엔 받아먹는 이 미터짜리 친구 때문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둘 사이에 나오는 작은 어리광을 좋아해요 사실 사과 같은 과일 깎지 않고 껍질째 충분히 먹을 수 있으면서 굳이 해주는 대로 먹는 이휘성이나 그럴 때 잠깐씩 스치는 뺨이 귀엽다고 느끼는 도윤우도 도긴개긴.

 

110. 평소보다 실적 나쁜 시기 살 아래쪽으로 죽 당기며 경기 영상만 보던 도윤우. 가져온 음료 한 번 마시지 않고 며칠씩 연습장에 향하는데 어느 날은 익숙한 체격이 어설프게 기둥 뒤로 숨어 쭈뼛대고 있더라고.

 

雨 … 너 거기서 뭐해?

星 보여? … 아쉽다. 너만큼 작을걸.

 

태연해서 더 황당한 그를 흘겨보다 오늘도 실수하면 집 안 간다는 농담 아닌 농조를 뱉자 잠자코 듣더니 굳이 큰 몸을 도윤우의 어깨까지 숙여 알았으니까 힘 좀 빼자, 대꾸하곤 오래 구경하지 않고 돌아갔어요 외출증 끊어가며 한 말이 고작… 기운 내라거나 힘내라는 고마운 격려에도 주저앉던 동작이 힘 좀 빼라는 다독임 한 번에 무사히 넘긴 건 기적 같은 이야기라 이번에도 실패했지만 어제보다 더 빨리 일어나 도전한 도윤우는 엉터리 미행과 응원에 더 큰 효과를 보는 것 같죠.

 

111. 못 보던 편안한 차림의 친구가 보이면 도윤우 선수랑 닮으셨네요 태연하게 말 걸고서 본인은 자전거 타고 줄행랑친 이휘성 얼마 안 가 속도를 늦춘 덕에 붙들려 쌍쌍바 먹던 여름방학

 

112. 의도는 모르겠으나 내민 손에 대충 하관부터 기댄 이휘성 장난스레 골골 긁기라도 하면 예외 없이 도윤우 정수리 위로 턱 괸 채 드릴처럼 꾹꾹 누르는 반격을 한다 처음 도윤우의 의도는 휴대전화 잠깐 달라는 신호였는데 무심코 턱이든 뺨이든 살살 기대길래 툭 치려다 말고 의미 없는 아이 컨택이나 하다 마지못해 겨우 용건 꺼내기 성공.

 

113. 온전하기 힘든 열아홉 미성년의 양면성을 사랑해 너에게 당도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우린 별도 뭣도 아닌 높이만 다른 친구니까 서툴게 다정하고 싶다 타인을 가리기 위해 자란 듯 어긋나면서 속절없는 기복과 스크린조차 무너뜨리는 윤우야. 우리 욕심은 미온에 그치지 말자.

 

114. 장신 센터 이휘성은 어중간한 침대에 대각선으로 누워 자는 버릇이 있을 텐데 교제 전 자고 가는 날이면 점점 뻗어가는 다리 길이와 무게를 버티기 힘들어져서 이후엔 사이좋게 바닥 취침 엔딩

 

星 처음부터 이렇게 잘걸.

雨 ... 나한테 네 다리 올려두면 소용없잖아.

星 약하다...

 

115. 오늘은 달래 일화 간식 달라고 해도 안 주는 오빠(도윤우) 대신 몇 시간만 봐주게 된 이휘성. 배 까고 애교 떨면 고구마 간식을 얻을 거라 계획했으나 이휘성 그는 강아지 꼼수를 이겨낸 유경험자였다… 그래도 내심 마음 약해져서 빡센 자전거 산책 후 먹여주고 또 산책하고 먹여줬더니 기절하듯 자는 달래 배에 미세한 복근이 생겼는데 이거 어떻게 된 일이냐.

 

雨 내 눈에만 보여?

星 하루 사이 무슨 복근이 생겨…

雨 아닌데. 단단한데…

星 깨우지 말고 너도 고구마 먹어.

雨 (((.ㅍ-(ㅍ)…

 

116. 느린 우체통으로부터 받은 우편물 대놓고 말은 못 했는데 경기마다 이휘성이 제일 간지 났어 넌 여전히 크냐 난 계속 피겨를 하고 우린 여전히 연락하며 살까 나 좀 생각했는데 너랑 다닌 학교 즐거웠어 등굣길에 괜히 교문만 기웃댄 이유에도 창가 명당 두고 다툰 날도 다 네가 있었거든 만약 여전히 가깝다면 놀려먹고 아쉽게 남이면 쫄지 말고 연락해 상황은 몰라도 난 항상 너를 기다릴 거야 친구잖아.

 

117.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아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방향도 좋지만 프로 가라 화창하게 웃고 쓰러질 파란색 아래 도윤우의 선택도 좋아해요 단편치고 길었던 우정

 

118. 도윤우 보여준다면서 평소엔 잘 하지도 않던 덩크 한 번 꽂고 프로 같다는 말에 휘벅휘벅 바보 같은 얼굴로 아닌 척 민망해할 이휘성

 

119. 종목 특성상 대학 진학 코스가 유리한 이휘성은 서교대 체육교육학과를 나올 것 같아요 해외 일정이 잦은 도윤우는 1년 늦게 이휘성 학교의 후배로 입학합니다. 그럼에도 걱정한 바와 달리 더 두터운 관계가 되겠죠 도태되기엔 한곳에 머물지 않는 선수들이니까. 고교 때보다 출중한 센터 후보가 많고 상대의 무거운 몸만큼이나 난관과 부딪힐 일이 많겠지만 이휘성이라면 하던 대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거예요 후회 없고 잘 해내고 싶다는 열아홉 휘성과 똑같은 다짐. 그리고 곧 입학할 새내기들에게 주전 자리 꿰차서 폼 내보라는 발언 끝에 도윤우가 내민 건 서교대 합격증.

 

星 … 너 나 되게 좋아한다. 학교까지 따라와?

雨 기껏 붙었더니 하는 축하는 못 할망정…

星 장난이지. 우리 다시 같은 학교네.

星 솔직히 말해. 진짜 노린 거 아니야?

雨 … 아니라고. 대학이 노리면 다 붙는대?

星 도윤우 그런 거 잘하잖아.

 

반박하기 위해 올려다본 그의 낯은 들뜬 미성년처럼 입꼬리 숨기지 못하고 눈을 깜빡 또 한 번 깜빡. 당연히 웃을 수밖에 우리를 기다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데. 이제 각자 리그에서 상상도 못 한 경험을 하고 들려줄 날만 생각하자. 이별이 없는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어.

 

120. 자고 일어났을 때 이휘성이 바로 눈앞에 있다면 사태 파악까지 침묵의 5초 겪고서 본능에 의한 몸을 빼고 식겁할 거예요. 애가 왜 여기 있지? 이렇게 가까워도 되나. 한편으로 자는 내내 아무 일 없었으니 이 정도 거리감은 괜찮은 건가 하고… 겁 없이 다시 원래 거리보다 더 좁혀 잠든 얼굴을 구경하겠죠. 이런 인상은 선하게 생겼다 싶을 때쯤 희번덕 눈 뜬 이휘성.

 

雨 까, 깜짝아…

星 뭐야? 내가 더 놀랐어.

雨 무슨 눈을 그렇게 떠?

星 …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

 

121. 체육인이라서 손톱 관리 말끔하게 되어있는 게 좋아요 이휘성은 굳은살 때문에 다소 투박하지만 하얗고 깔끔한 손일 테고 도윤우는 손가락이 긴 편인데 전체적인 뼈대가 얇아 비교적 손이 더 커 보이는 점도 있습니다. 평균보다 큰 크기에 속하는 이휘성의 손이면 도윤우는 물론 농구공까지 단번에 잡을 수 있겠죠 남이 보기엔 둘 다 큰 체육인인데 사소한 데서도 차이가 나요. 가끔 손목부터 뭉친 근육을 풀어줄 때 생각하지만, 도윤우는...

 

星 ... 혹시 부러질 것 같으면 미리 얘기해.

雨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122. 스물아홉 도윤우는 이미 은퇴 후 편하게 증량할 것 같죠 그간 종목 때문에 무게 조절하느라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웨이트 치는 건 불가했는데 열심히 살아온 미성년 덕분에 무한할 가능성은 잠시 보류하고 안정적으로 쉬엄쉬엄 지내는 편입니다. tmi 증량하니 이상하게 현역일 때보다 촬영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덧붙여 이 시기엔 농구 현역인 이휘성과 동거를 해요 비죽 튀어나오는 모난 재미가 덜해 아쉽지만 소파와 한 몸이던 부스스한 머리의 상태로 도벅도벅 마중 나온 모습 등 새로운 재미도 보는 중이고... 도윤우가 1cm 자라는 9년 동안 이휘성은 과연 얼마나 더 컸을지 궁금하네요.

 

123. 고양이로 변한 이휘성, 도윤우의 링크장 출석 직전마다 가방이 사라지는데 수상하게 식빵 굽던 이휘성을 들어 올리면 쭉 늘어난 몸 아래 짐 넣어둔 가방이 있을 것 같아요 수작질 먹히지 않자 눈 마주쳤을 때 평온한 얼굴로 컵 깨는 등 가지 말라는 애교는 제발 귀엽게 부려 오열하는 주인

 

124. 곧 스물인 애들끼리 놀이터 시소를 차지하고 앉아 장난치는 거 실없고 유치하다고 할 수 있지만 도윤우가 앉은 곳을 공중까지 높게 띄웠다가 천천히 내려두고 미끄러지듯 냉큼 옆에 앉아 균형 맞추는 이휘성도 가끔 이 시간이 느리게 가길 바라거든요

 

125. 도윤우에게 안 어울리는 감정은 의외로 열등감이에요. 이휘성이 아닌 인물도 순수하게 잘한다 닮고 싶다 본받고 싶다, 여러 감탄만 할 뿐 스스로 고른 길은 과연 해낼 자신 있는지 최선이었을지 의심하고 꺼리는 편입니다. 분명 시작은 주위의 칭찬과 빛에 대한 동경이었으나 현실로부터 오는 압박이 양가감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죠. 하여 도윤우는 피겨를 정말 잘 해내고 싶은 반면 관뒀을 때 올 파장이 두려워 물러날 선택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종목으로 여기곤 해요. 이윽고 스스로 별까지 비상할 이휘성을 다른 이보다 오래 동경하고, 감전된 듯 저릿한 감각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불어난 지 한참인 마음이라서… 이 또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지인 건 피겨와 마찬가지네.

 

126. 막상 안 먹으면 그만인데 한 번 꽂힐 때마다 찾게 되는 증상 이휘성도 대전 내려갔을 때 겪었을지 궁금해요 한동안 안 먹던 빵을 섭취한 영향으로 식단 패턴 되돌리기가 어려웠고 다음부턴 조금 더 조절해야겠다는 깊은 다짐 따위를 하고도 다시 본가에선 가족과 마히다 그히 행복한 시간 보낼 막둥 휘성. 먹성이 좋다고 표현할 수 없는 도윤우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비시즌 때 겪은 바 있습니다 그가 꽂힌 대상은 김부각… 칼로리가 타 과자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무게 조절이 매우 중요한 종목인 만큼 한동안 끊기 위해 고생깨나 했어요 풀때기 먹기 싫다.

 

星 대체 식품 먹은 적 있어?

雨 있지. 샐러리.

星 … 그건 결이 너무 다른데?

 

127. 벚꽃 얘기하기 이른 시기지만 이휘성 키쯤이면 원중고 근처 낮은 벚나무들은 쉽게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떨어지는 벚꽃 잡으면 사랑 이루어진다는 속설, 그리고 이상할 만큼 이휘성과 다닐 때마다 잘 떨어지는 꽃잎들.

 

雨 또 부딪혔어?

星 사람 지나가서 못 피했어.

 

조금 김이 팍 새버렸지만 봄은 바닥과 하늘이 사랑 투성이인 계절 도윤우는 겨울이 끝나고 막 열기가 만개하는 봄을 정말 좋아했고, 인생에 간절함이라곤 경기 기록인 애치고 머리 위로 꽃잎 떨어지면 서둘러 받아버릴 것 같아요. 뒤따르던 이휘성이 떨어뜨린 줄 모르고…

 

星 되게 간절했나 봐.

雨 … 너 이럴래?

 

투닥이며 장난 못 치게 나란히 걷다 이번엔 이휘성 귀 바로 옆으로 떨어지는 꽃잎을 잡아내곤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웃겠죠. 너보다 내가 먼저 잡았어. … 이제 농구공도 잘 잡겠네. 실없는 대화와 모호한 긴장 속 꽃잎만 앞뒤로 돌린 어느 봄.

 

128. 더운 나무 그늘 아래서 받은 이온음료를 둘 중 먼저 뚜껑 여는 쪽이 상대에게 건넬 배려가 귀여워요 어제는 이휘성, 오늘은 도윤우… 그러자고 정한 적도 없는데 덜렁 달린 음료수를 보면 애는 내 완력에 대한 인지는 할까 의아해지곤 합니다. 그런 생각도 처음부터가 아닌 어쩌다 받아먹다 보니 무심코 떠오른 편이라 아무렴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꿀꺽 넘기는데 평소 세심한 미성년들이긴 해도 함구할 뿐 서로에게 안 해도 될 의식을 많이 한다는 자각쯤 있을걸요.

 

129. 아울러 저는 휘성과 윤우의 경기에 서로 개입하지 않는 선을 좋아해요. 감정은 부가적이며 선수로서 스스로의 빛을 개척해 내는 건 본인 몫이라 생각합니다. 닿을 수 있는 참견은 가라앉더라도 금방 부유할 수 있도록 밀어줄 힘. 이휘성은 도윤우의 앞에서, 윤우는 휘성의 뒤에서... 아주 오랜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네가 못 본 우주를 얘기해 줄게. 그러니 우리는 꼭 끝을 끝내자. 이별 없는 이변을 만들자. 양가감정의 종착지 비가역적인 단계에 이른 星雨.

 

130. 별은 역행하지 않아 우린 그때부터 약속된 거야 너는 반드시 나를 잡아줘야 하고 난 기필코 너에게로 쏟아질 거라고 숨죽일 듯 응망하다 구 안쪽에 힘껏 말아쥔 말을 헛구역질로도 뱉어내지 못해서 한 움큼 살아 머금고 넘기고 삼키고 영 개운치 않아도 한 철만 겪는다던 이 불온한 이탈조차 나이가 들면 귀했다고 회상할까? 그날도 네가 있을까? 그때 네게 우리보다 더 귀한 게 생길까?

 

131. 체육대회 때 한참 뛰다 다른 애들 구경할 차례인 도윤우는 수건을 목에 두르기보다 양머리로 만들어 쓰고 다녔는데 원래도 어디 있든 잘 보이던 애가 하얀 양머리까지 달고 다니니 위치 추적인 양 쉽게 찾아낼 다음 출전자 이휘성 끝난 뒤엔 도윤우에게 받아서 나란히 양머리 달고 한 명은 슬러시 한 명은 이온 음료 마셨을 것 같죠 남자끼리 징그럽게 뭘 쓰고 다니냐는 말 아랑곳하지 않고 축제 순서 될 때까지 달랑달랑 쓰고 다닌 둘. 불편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괜찮았대요 은근히 스타일 추구하는 도윤우 픽 양머리. 다른 주제지만 달리기 종목 중 쪽지에 ‘잘생긴 학생을 데려오세요’라고 적혀 있으면 둘 다 이 장르 공식 미남 데리고 갈 극강의 진심 모드 운동인인 점이 귀여워요 뭔지도 모르고 붙들려서 뛰는 전OO 군… 사례는 감자튀김으로.

 

132. 좋았던 기억에 낭만이라 적힌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인다면 농구를 시작한 날부터 콕콕 박던 이휘성에게 숙여보라고 까닥인 뒤 이마 위로 챱 낭만을 붙여주는 도윤우 그런 꿈을 꿨다.

 

雨 … 왜 쳐다봐?

星 아. … 그냥. 뭐 줄 거 없어?

雨 숙제 안 했어?

 

꿈은 꿈일 뿐 도윤우가 모르는 건 당연한 건데 괜히 괘씸해져서 뒤통수 누르는 척 강아지 그린 포스트잇 붙여두고 휘벅휘벅 빠져나간 지 삼십 분, 뒤늦게 발견한 도윤우는 대뜸 바보에다 강아지까지 연타로 맞고 어리둥절한 상태.

 

133. 안 그럴 것 같은 애가 활짝 웃는 게 좋아요 가까스로 잡은 승리에서 두 팔 활짝 열며 신난 이휘성이나 급식 메뉴 중 스마일감자 눈에다 케첩 뿌린 거 보고 큭큭 웃는 도윤우도 한창 단순한 감정이 무럭무럭 자랄 아이들…….

 

134. 파란빛 도는 눈이 예쁘고 신기해서 무심코 빤히 본 적도 있겠죠 왜 쳐다보냐고 물으면 곧이곧대로 눈 예쁘다 대답한 도윤우에게 당황하는 이휘성, 애는 이럴 때만 되게 거리낌 없다. …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사각사각 소리 내는 펜촉과 책만 응시하더니 너도 눈물점 예뻐 받아친 소리에 이젠 도윤우가 덜그럭 당황하며 둘 다 이게 뭔 짓이지 애매해지는 오후.

 

135. 드물게 몸살 걸린 자신의 양을 가늠 못 해서 작은 사이즈로 죽 소분해 덜렁 들고 온 도윤우를 진심이냐는 듯 흘겨보다 두 통 말끔히 비웠는데 끊임없는 열에 해열제를 더 복용해야 할지 고민하자 미적미적 끌어안고 인간 쿨링시트라는 소리만 웅얼대는 이휘성

 

雨 ... 저기. 자?

星 응. 자.

 

두 팔로 뒤에서 단단히 붙든 데다 아픈 애를 밀어내기엔 굳이 무안할 짓 하기 싫고 엉거주춤 평소보다 깔끔하지 못한 앞머리 쓸어주며 모르겠다 한숨 자야지 다른 거부 반응을 안 보일 것 같죠 못 이기는 척 얌전해질 거라는 거 이휘성이 몰랐을까.

 

136. 봄이면 곳곳에 진달래도 보이는데 도윤우의 강아지인 진달래가 떠올라요 이맘때쯤 누나 때문에 데려와 별 의미 없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지금은 어느 꽃보다 가장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만요.  도윤우의 절대적인 편, 소중한 여동생. 진달래 시점에서 본 유성우 이야기도 조만간 빠르게 준비해서 풀어보고 싶어요 TMI 유독 봄만 되면 달래와 산책하기 바쁜 도윤우 오늘도 진달래에게 달려든 달래를 잡느라 기력 소진 상태.......

 

137. 분명 만우절 장난치려고 뒷자리에 앉아 좋아한다고 얘기한 건데 귀 끝까지 발개져서 되묻는 이휘성을 보면 도저히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애초에 거짓이던 적도 없고. 짓궂을 땐 영락없는 열아홉 동급생처럼 냉정할 땐 타인인 점 빈틈없이 느끼고 말지만 좋아하는 친구에게 또 하필이면 이브 꼬마의 설렘과 같이 만우절을 기억할 애도 아니라서…… 덩달아 새빨개진 도윤우는 기어들어 간 목소리로 정정하겠죠.

 

雨 … 만우절.

星 어? … 아. 맞다.

雨 이제 알았어? 둔하네…

星 모른 척했다고는 생각 안 해?

 

星 아. 만우절 재밌다.

雨 야, 너 진짜…!

 

그 잠깐의 실토에서 순간적인 표정 변화를 본 이휘성은 더 가깝게 바짝 붙을지 관찰하다 결국 중지끼리 닿던 손을 뒤로 물리고 평소의 속도대로 굴 거예요. 날에 연연하는 건 아닌데, 속임수 같은 고백보다 꿈과 헷갈리는 날짜가 나아.

 

138. 학교에서 영화관이라도 가면 이휘성의 좌석은 자동 맨 뒷자리인데 덩달아 조용히 보는 게 좋다는 말로 옆자리 앉은 도윤우를 응시하더니 키높이 쿠션 하나 들고 오는 태도 진심인가 싶다. 진지한 의도는 아니었고 장시간 굳은 자세가 뻐근한지 자꾸만 목 누르던 도윤우에게 입 모양으로 기대라고 벙긋댈 것 같죠 습관적인 그의 배려만큼이나 무심코 팝콘 먹이려고 내민 손을 그대로 돌려 다시 이휘성 입에 넣는 행동 또한 도윤우의 습관입니다. (팝콘 싫어파) 들어갈 땐 팝콘뿐이었는데 집합하니 둘 다 바보 같은 얼굴로 오징어 질겅질겅…… 마히다 그히.

 

139. 전학생 이휘성은 도윤우의 호의가 의아했던 적이 있어요 무슨 이유로 살가운지 쉬운 인상은 아닌데…… 농구부이자 같은 반인 친구에게 혹시 여기 마니또 놀이 있냐는 질문을 한다든가. 도윤우도 거리낌 없이 가까워질 수 있는 성향보다 다가오는 사람과 사귀고 갈 사람 막지 않는 편이라서 비슷한 두 사람은 어쩌다 친해졌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할 것 같죠 의외로 코드가 잘 맞았고, 그만큼 의외의 면도 보였고, 그게 이례적으로 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이런 친구가 되고.

 

140. 체육 수업 끝나고 잠깐 사라지더니 그사이 세안 후 돌아온 도윤우의 앞머리는 물기가 윤랑윤랑 맺혔을 것 같죠 부채질하다 슬쩍 앞머리 올려주곤 사과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급식에 사과 나와서 눈 말똥해진 이휘성

 

141. 사진관이 낯선 미성년끼리 쭈뼛쭈뼛 어떻게든 찍고 대충 고양이 붙여가며 꾸민 스티커 사진을 나눠 갖던 학창 시절 후엔 그날과 비슷한 포즈에다 더 가깝게 포토이즘 찍는 날도 오겠죠 변색된 사진 위로 새것을 올려두지만 여섯 장이 넘을 때까지 사진 속 인물은 늘 동일해. 별개로 피겨 선수 도윤우의 프레임도 귀엽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오자마자 찍었다는 연락이 왔는데 정작 프레임 속 인물은 없고 오직 도윤우 프레임과 벽지만 찍힌……

 

星 나? … 난 굳이?

 

142. 훈련 전인 체육관에 누워 생수 뚜껑을 쥔 채 피겨로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깔짝대던 도윤우는 웃기지만 빛나고 싶을 거예요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된 활기가 호승심뿐인 객기가 되더라도 성공하겠다는 욕구. 이 나이대의 방황이 여러 차례 확인한 답안지를 막상 제출하면 또 틀린 듯하니까 도로 뚜껑을 원래 위치에 걸더니 이번엔 페트병 라벨까지 떼는 이휘성 진짜 한결같죠.

 

雨 넌 꼭 메달 따.

星 뭐야, 안 할 것처럼.

雨 성공한 친구 두면 위안 될 것 같아.

星 아예 대놓고 의도적이네.

雨 오… 멋있겠다. 인터뷰에서 얘기할래.

星 … 윤우야. 탈수 왔어?

 

턱 꼬집는 그를 올려보기엔 또 지나치게 불이 밝고…… 미간만 찡그리다 다음 수업을 위해 먼저 일어나면서도 못내 하지 못한 말은 늘 아쉬워요. 별건 아닌데 그냥 그때까지 친구였으면 했고, 너를 만나 좋다는 소리라든지 입에 담았다간 바짝 세운 솜털이 쉽게 못 가라앉는 거 있잖아 하마터면 너를 잃을 뻔한 문장 말이야.

 

143. 오프 더 레코드, 실제 배우의 나이 열아홉부터 스물까지 적지 않은 시간 휘성윤우라는 사람을 연기했습니다 배우란 직업의 도윤우와 다르게 이휘성은 운동인으로 첫 캐스팅 된 신인일 것 같죠 선수 이외엔 체격 고증이 까다로우니까. 도윤우도 연차가 빼곡하지 않고 이도 저도 아닌 무명 배우로 활동하다 이번 작품에 들어간 건데 여태 본 배우 중 합이 잘 맞고 그간 전념하느라 놓친 고등학생을 간접으로나마 겪어본바, 오랜만에 마음 편히 미숙할 수 있던 작품이었다고 고르게 돼요. 본 성격과 큰 차이점은 없겠으나 도윤우는 배역보단 살갑고 애교도 할 줄 아는 점이 다르겠네요 이휘성은 늘…… 진중하고 조금 더 쉽게 웃어주는 편입니다. 어쩌다 보니 웃어버린 장면을 도윤우의 권유로 편집하지 않고 방영되기도 했어요 자연스럽고 서툰 감정이 드러나야 하는 이야기에 이보다 좋은 연기는 없다면서. 무명 배우 도윤우의 인터뷰는 이휘성 한 사람에게만 큰 화제가 되겠죠 그 애는 북받친 감정을 ‘휘성’으로 성실하게 표현할 줄 알아요. 저도 ‘윤우’처럼 코트에 있을 그를 응원하고 싶고요. 그리고 훗날 같은 카메라 앞에서 만난다면 얘기해 줄 거예요. 나는 너와 내가 다시 한번 ‘휘성과 윤우’가 될 날을 기다렸어, 이렇게. 무슨 의미일지 열린 결말을 닫으려면 각자 위치에서 닦고 뛰고 빛나야 할 아이들, 하나의 AU일 뿐 본 이야기와는 무관한 세계입니다.

 

144. 군기 잡는 농구에 비해 피겨는 자유로운 편이에요 마땅히 선후배 관계도 없고 직접적인 마찰만 일어나지 않는 한 개인플레이를 터치하지 않는데 스포츠가 으레 그렇듯 신경전만큼은 있을 것 같죠 빠따보단 멘탈 유지에 힘주는 도윤우. 팀 내에서 무서운 인물로 꼽히는 이휘성도 저학년일 때 스포츠 특유 군기를 피할 수 없지만 불평하지 않고 어쩔 수 없다로 넘길 성질, 도윤우의 방황을 엿봤을 때도 비슷하게 치부했고요. 다만 모르지는 않아요 개입하지 않는 게 자존심 지켜주는 배려일 뿐이지……

 

145. 남자 고등학교의 kiss or slap 도윤우와 함께 있는 이휘성에게 냉큼 카메라 내밀었더니 물어본 애 말고 도윤우 이마에다 입 맞춰서 목격한 이들과 당사자를 얼어붙게 했던 사건.

 

星 … 뭐야? 이러라는 거 아니었어?

 

챌린지부터 잘 몰라서 엉겁결에 발생한 일화지만 왜 안 때렸냐고 묻자 농구부는 사람 치면 안 된다고 답변할 것 같죠 전력으로 칠 생각이었나 거의 입술도 안 닿았던 이마를 문지르느라 지금 교과서는 물리인지 영어인지 도윤우의 골은 깊어져만 가고……

 

146. 생각해 보면 독특한 친구예요 도윤우의 시선은 늦지 않게 눈치챘으면서 그 애가 뻗을만한 위치에 느린 속도로 걷고 의심할 의미를 담으며 작은 머릿속 감정의 일부가 자신인 점이 가끔 기꺼운 이휘성. 다만 범위 밖으로 튈 수 없게 가로막는 센터처럼 항시 우연인 척 준비된 유성의 수비를 하고 선선한 호흡을 자주 가다듬죠 난 단지 얼른 너와 만나 쏟아지고 싶어 역행이란 개념 없이. 그곳이 너울이라도 물 위로 빛을 심는 이들의 신뢰란 무한하다.

 

147. 학교 다닐 때 교제하면 알리고 다니는 성격도 아니라서 주변이 쿡 찔러야 대답할 것 같죠 이휘성은 얘기 안 했었나 식의 반응이지만 묻자마자 침묵하더니 머리를 사납게 털며 티 났냐고 되묻는 토마토 도윤우. 티가 아주 난 건 아니었는데 간혹 짝사랑부터 확신하는 사람이 있었을 듯해요 새삼 둘은 정말 숨길 생각 없는 놈처럼 굴었으니까. 어깨에 두른 팔로 은근히 포옹하거나 마주 엎드려선 자는 애한테 장난치고, 먹다 묻으면 닦아주고, 미심쩍게 여기지 않은 행위가 온통 애정이라니……

 

148. 여러 세계를 생각하지만 일전 풀었던 행성 휘성과 인간 도윤우의 이야기를 아낍니다 이휘성은 본래 모습으로 귀환했고 도윤우 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은 푸른 점, 그렇게 수년이 흘러 비행사가 된 도윤우. 이름 없는 행성에 달했으나 꺼져가는 시야가 불러온 마지막 환각인지 저것이 정말 ‘휘성’인지…… 알 수 없었죠 열기가 창백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느꼈는걸요 우린 늘 붉고 노랗고 분산된 색으로만 열을 표현하던 인간이니까. 샛노란 열에 의해 깨어나자, 그늘을 만들다 말고 미리 열어둔 탄산수를 내민 이휘성은 어제와 같은 얼굴이었어요. 분명 아주 불쾌하고 외로운 기분이었는데…… 곧 여름임에도 으스스한 팔목을 쓸며 전날 본 스릴러물이 문제였겠거니 생각하죠 이곳의 휘성과 윤우는 평화롭습니다. 모든 건 기시감이야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잖아, 어디에서든.

 

149. 첫 음주는 도윤우의 집에서 가까운 장소였어요 어린 어른을 자극하던 소주보다 단 술이 많은 어른의 세계, 둘 역시 이제 막 스물인 또래 친구들이 갖던 호기심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량 파악도 덜 된 채 차례대로 여러 병 비운 결과 거의 죽은 도윤우를 바래다준 이휘성도 딸꾹질과 더불어 메슥대는 구역감이 올라오자 덩치도 큰 남자끼리 현관에 뻗듯 늘어지겠죠.

 

雨 …… 야. 하나둘 하면 침대로 가는 거다.

星 어…… 어.

星 몇까지 셌어?

雨 몰라…….

 

雨 나 보고 있어?

星 응.

雨 다행이다…… 계속 봐.

星 그건 윤우 너 하는 거 봐서.

雨 …… 잘해주잖아.

 

맥 빠진 웃음 이후엔 곤히 잠든 도윤우를 주시하며 벗어 던졌던 패딩을 이불처럼 나란히 덮곤 이휘성은 느른한 눈꺼풀이 아주 감기기 전 그의 뺨을 콕콕…… 잘하려고 해서 문제인데. 너는 항상 잘하려고 하니까. 알딸딸한 술기운 핑계 삼아 한 짓은 그냥 학생 때 체육관에 드러눕듯 더 깜빡이지도 않는 현관 아래 누워 손만 꼼질대다 뻗기. 다음 날 숙취와 근육통으로 누구 하나 쩔쩔맬 때까지 이어질 평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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